강박적 혁신의 딜레마
<’무어의 법칙’이란 게 있다. 마이크로칩의 밀도는 약 1년 반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간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비행기가 힘차게 이륙하는데 사람은 이를 따르지 못하고 ‘잠깐만, 거기 서 있어’하며 매달리는 형국이다. 이런 일은 곳곳에서 자주 일어난다.> -존 마에다 총장,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SID)
지난 주말 인터뷰 기사를 읽다 ‘이거다’ 싶었다. 언젠가 비슷한 맥락에서 <테크니컬 랑데부, 우위와 적합성>이란 글을 쓴 적이 있어 이와 같은 주제가 한층 더 깊게 다가왔다. 홍익대 변지석 교수님의 블로그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발견한 적이 있다. <Devil’s Theory of Innovation>이란 제목의 글에서 예로 든 건, 한 면도기 회사가 3개의 날에서 5개의 날로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출시했는데 정작 사용자들은 그 미세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이전 것이 더 낫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경우들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어떤 조직이건 현상유지(status quo)보다는 지금보다 확장된 영역으로의 이행, 즉 ‘혁신’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면 내외부적으로 혁신이 필요한 때와 그 정도를 제대로 가늠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모두들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상한 최면에 걸려있지, 그 누구도 ‘우리가 혁신을 과연 필요로 하는가? 왜 그런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필요에 의한 혁신’이 아닌 ‘(통과의례적) 혁신을 위한 혁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위의 예들처럼, 혁신의 과정 이후 누구도 이에 대해 환영하거나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혁신이란 강박에 시달리게 되면 무조건 더 새롭고 더 모던한 무언인가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혁신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존 마에다 총장이 예견하는 것처럼, 정보기술의 괴리는 줄어들고 기술수준이 평평해지는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이다. 문제는 혁신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당위성이며, 조금 더 다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힘-독창적 안목이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