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체류기 (2) 베니스비엔날레 2009

<Making Worlds>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6월 7일부터 개막한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현장을 다녀온 것은 체류 2일째. 비엔날레는
크게 두 곳의 공간, Giardini와 Arsenale에서
진행되었다. Giardini는 월요일에 Arsenale는
화요일에 휴관을 하는 관계로 필자가 방문했던 화요일에는 Giardini를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 오픈 시간 전부터 많은 행렬로 입구는 붐볐지만, 느긋한 유러피언
행정에 기나긴 줄은 줄어들 줄 몰랐다. (여담이지만, 한국사람들의
성미가 급하긴 급한가 보다. 상대적으로 느린-그러나 그들에겐
정상적인-속도의 일 처리를 마주할 때면 기다림의 미학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Giardini는 총 30개의
국가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 공원 안에 국가관들을 취향대로 찾아 다니는 맛이 있었다. 입구를 통과해 처음 들어갔던 곳은 러시아관으로 ‘혁명적인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앞세웠다. 6000년 이후의 지구와 세상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그려낸 각각의 일러스트가 재기 넘쳤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전시관은 노르딕 국가관(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었다. 어느 게이작가의 죽음을 영화 세트장처럼 꾸민 것이 특징이었는데, 관객들에게 그를 죽음으로 몰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듯 여러 단서를 남겨준 것이 쏠쏠한 재미를 자아냈다. 물론 그 안에 놓인 여러 설치작품과 디자인, 회화작품 등은 이 전시를 위해 직접 만든 것이어서 ‘스토리’가 있는 전시, 디자인과 파인아트의 경계를 해체하는 전시로서 각광받았다. 특히 노르딕 국가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특유의 정갈한 분위기와 그들의 가구디자인, 실내디자인 철학이 잘 맞아떨어져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면서도 자신들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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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덴마크관도 이러한 재기발랄함에 동승하는 듯했다. 수집문화에
대한 냉소와 그 안에 숨은 여러 개의 스토리와 글로벌리즘과 관련된 여러 생각들을 찾아낼 수 있게끔 설치되었다. 유럽의
어느 고급 가정집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부서지고 왜곡된 설치물은
오랜 역사 동안 지속되어왔던 유럽의 수집문화가 내포한 허영을 꼬집는 듯했다.

반면 한국관은 지리적으로도 찾기 쉽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져 조금 아쉬웠다. 초청작가인 양혜규의 설치작품 또한 현지에서는 ‘난해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일본관의 거대한 사진작품은 일그러진 미를 표현하려고 했지만, 이미지의 지나친 그로테스크함 때문에 애정을 가지고 감상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미국관은 방문객 숫자까지 컨트롤해가며 까다로운 면모를 보였지만, 브루스 나우만의 8,90년대 유명작품들을 전시해 참신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우만은 이미 정상을 차지한 작가이고, 그의 신작이 아닌 20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을 신진작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오마주도 아닌 형식으로 다시 전시하는데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프랑스관은 전시관 내부를 칠하고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 않았는지 악취가 심해 다섯 발자국 이상 진입하기가 어려울 정도였고, 독일관은 목재가구와 나레이션을 접목해 전시했지만 큰 호응은 없었다.
비엔날레의 중요성은 누구나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유럽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은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조금 더 효과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과 예술강대국이란 단어를 아직 동일시 하기에는 이르지만, 노르딕 국가관처럼 스스로 가진 강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어떤 이는 역사를, 어떤 이는 미래성을 어떤 이는 엽기와 충격을 내세우는 가운데, 과연 우리의 색깔,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되는 기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