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고민돼요

프롤로그

어떤 젠더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입을 잘 열지 않는 성격이라(때론 소모적인 논쟁이 난무한다고 생각하기에), ‘여자라서’, ‘여성이어서란 조건을 다는 것도 좀 구차하게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여자라서 고민된다는 식의 논의를 펴는 것은, 사회구조 상 그리고 젠더 특유의 성질 상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고개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스물의 여자가 다르고 서른의 여자가 다르듯, 여자가 가지게 되는(또는 가질 수 밖에 없는) 고민의 성격도 바뀌게 되어있다. 누군가에겐 굳이 여자여서가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서의문제일 수도 있겠다. 이러나 저러나 고민이 되는 건 이성이 달린 슬픈 동물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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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길을 막는 건 바로 너야

최초라는 수식어를 다는 것은 원조라는 수식어를 다는 것만큼이나 부담이 되는 일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지만, 작은 예술학교의 최초의 여성총학생회장 당선’, 그리고 최초의 여성러닝메이트 당선이란 꼬리표는 들리는 것만큼이나 거룩하고 영예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학생회 일이 한창이던 때, 여지없이 봄날의 축제는 시작되었고 그 기간 동안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자 했던 한 과목의 교수님과 맞닥뜨리던 순간,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어머, 여학생들이 이끄는 총학이라니, 얼마나 고무적인지 모르겠네요.” 생글거리는 말문을 트고 난 이후에도 그 고무적인 성과에 대해서 한참을 떠드시더니, 결국은 고무적인 성과를 낸 여성회장단에게 내가 쓸 자리니 물러나라고 물러서지 않는 여성적 전투성을 몸소 체험케 해 주셨다. 물론 두 가지 일은 성격이 다르기에 하나의 사안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최소한 고무적인 성과에 대한 포문은 아예 열지 않았던 게, 같은 여성vs여성의 대화에서 훨씬 덜 비겁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굳이 매사에 그 공식이 들어맞지 않았으면 하지만, 정치적인 여자의 적은 정치적인 여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 때 미처 못한 말: 난 당신을 위해 고무적이고 싶진 않군요.)   

괜찮아, 이것 봐, 얼마나 근사하니

아이러니는 여자의 적뿐 아니라 여자의 친구도, 그것도 최고의 친구도 여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작지만 실속 있는 전시회를 앞두고 고민하고 있는 작가 친구를 만났다. 공모 데드라인에 맞추어 전시컨셉을 잡기는 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설치해야 하는 날짜는 다가오고, 기대하는 주변인은 많고, 시시한 작품을 내고 싶지는 않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스물 넷의 친구였다. 조언을 듣고 싶다는 말에 작업실을 찾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친구는 그래, 언니가 해주는 말이 필요했어라며 구겨진 인상을 조금 풀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예술의 문제에 있어서 타인이 구체적인 답변을 해주기는 어렵다. 나의 경우도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언니또는 같은 여자친구로서의 심정적 지원은 때론 남자친구의 그것보다도 부모의 그것보다도 더 가깝고 에너제틱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여자는 여자의 자신감, 그리고 자존심의 영역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 줄 수도 누구보다 더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결국은 양날의 칼을 모든 여자들이 서로를 향해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글쎄. 그건 비단 젠더의 생리이지, 좋고 싫고 또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여자가 듣고 싶어하는 건 (물론 남자의 경우에도 상이하다고 믿지는 않는다), 결국 괜찮아’, ‘좋다’, ‘이해한다’, ‘그래’. 때때론 참 근사하다란 말일 게다. 어렵지 않다고? 곰곰이 돌아보라. 스스로 얼마나 자주 이런 말을 했는가를 말이다.   

결국은 ‘우리의’ 문제더라

일전에 EBS의 간부직에 계시던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10년 후 이력서를 한 번 써보라고 하셨다. 상상의 나래를 편 채, (당시 로스쿨 문제로 한창 시끄러웠다) 5년 후 로스쿨 졸업, 이후 방송통신법 관련 전문변호사 따위의 내용을 가득 채웠었는데, 돌아온 건 한 마디 질타. “어떻게 개인적인 삶은 그렇게 쏙 빠졌어?” 당시에는 누가 감히 이력서에 결혼, 출산 등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를 쓰겠나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누가 보기에도 부러워할 만한 이력서를 써 가지고 오라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삶에 대한 고찰, 계획에 대한 재고에 대해 찬찬히 훑어보라고 주신 시간이었던 듯. 그걸 서른의 문턱에 서니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요지경 같은 요즘 세상에선 시원한 정답이 없다. 결혼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일을 해도 문제, 놀아도 문제, 살아도 문제, 죽어도 문제. 모순 투성이라, 굳이 하나를 쭉 밀고 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최근엔 자연스레 결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게 굳이 나만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더라는 게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그래도 결국 인간은 혼자가 아니더냐, 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은 본질적으로 나와 너의 문제이지 오롯이 나만의 문제로 끝나지 못한다. 그런 속성을 생각할 때, 나만을 위해 공부하고, 나만을 위해 결혼하고 나만을 위해 자아성취를 하지는 않는 다는 결론이 나온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부터 코스모스라는 큰 사회에 이르기까지 범위의 문제이지, 결국은 그 안의 나이기 때문에 내일이 있고, 그 다음이 있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나, 여성의 문제도 너, 우리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다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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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차마

위의 상황들은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란 거다. 그리고 아마 여기에서 이란 영영 없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자라서 고민되는 문제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원망도 해보고,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가 아닌 무엇이 되던 간에 문제들은 산재해 있다. 과거 사회에 비하면 그 문제들이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한다. 문제의 양이 아닌 성질의 문제다. 과거의 문제와 오늘의 문제는 그 성격이 바뀐 것이다. 그렇기에 고민의 시기는 달라졌을 지 언정, 총체적인 스트레스는 유사하다. 그러나 젠더가 이미 숙명이라고 한다면, 그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대한 조화롭게 해결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힘든가? 포기하고 싶은가? 우리를 좌절시킬 만한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하다. 이 와중에도 힘이 되는 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무수한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힘이 되는 건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란 거다. , 해낼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여자여, 일어나라. 그리고 함께 걸어가라. 그대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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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5 12:51 2009/05/1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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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연 2009/05/18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새겨 읽고 기억하고 싶네요
    언니 그런 얘기 좀 듣고 살지 않았어요?
    강씨 여자들 보통이 아니라고.ㅋ

    • 강보라 2009/05/18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네 좀 들었죠. 전 그래서 본성을 숨기고 살아가려구요. (그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