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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평'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8/27  7인의 음악인들
  2. 2009/08/24  Tacit Group Recital
  3. 2009/07/09  윤상문법
  4. 2009/07/05  <Spring Awakening>
  5. 2009/06/07  ‘感’하라!
  6. 2009/05/17  서울재즈페스티벌 2009 (3)
  7. 2008/08/01  지휘자의 등
  8. 2008/07/03  닥터 이라부 – 현대라는 정신병
  9. 2008/06/26  클래식형 스펙트럼

7인의 음악인들

소문이 자자했다. 2007년 성남아트센터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하고 이듬해 금호의 <라이징 스타 시리즈>의 무대에 다시 서 국내에 빠르게 입소문이 퍼진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87년생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94년 독일 청소년 음악콩쿨에 최연소 1위 입상을 하면서부터 젊은 천재의 탄생을 예감하게 했다. 그녀가 올해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모차르트 소나타 음반을 내놓고, <7인의 음악인들>이란 실내악 공연과 <모차르티아나>란 제목의 독주회를 위해 국내무대를 찾았다. 정명훈과 양성원, 송영훈이란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이 갓 스물 두 살의 그녀에게 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무대에서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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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있었던 공연은 내부사정으로 인해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작품으로는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제12번 다단조가 연주되었는데, 김수연이 세컨드  바이올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연 돋보이는 균형성과 리드감을 보여줬다. 오히려 퍼스트 바이올린의 이유라가 빛이 바랬을 정도. 상대적으로 연륜이 있는 양성원(Vc)과 최은식(Va)의 안정감 있는 연주도 좋았지만, 그에 뒤지지 않는 침착함을 보여준 김수연의 공 또한 컸다. 예정된 프로그램과 조금 순서가 바뀌어 두 번째 곡으로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3중주 제2번 마단조(작품번호 67)가 연주되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죽은 친구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곡은 몽환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입부가 상당히 인상적인데, 송영훈(Vc)의 선율을 시작으로 김수연(Vn)과 김선욱(Pf)이 다음을 유연하게 이어갔다. 특히 김수연과 김선욱이 연신 싸인을 주고 받으며, 호흡을 맞춰가면서도 독자적인 존재감을 살려가는 것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여유로운 연주를 펼쳤던 김선욱은 88년생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함을 과시했다. (심지어 능글맞아 보일 정도!) 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정명훈과 김선욱의 연탄곡으로 연주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4번과 5번은 청중의 귀에도 익숙한 곡이어서 호응이 뜨거웠다. 마지막으로 슈만의 피아노4중주 내림마장조(작품번호 47)가 연주되었는데, 정명훈(Pf), 양성원(Vc), 최은식(Va), 이유라(Vn) 모두 나무랄 데 없이 균형 잡힌 해석을 보여주었다.

앵콜곡이 (어떤 면에선) 본곡보다 한층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것이 이례적이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전 피아졸라의 탱고 앨범을 발매한 전적이 있는 송영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첫 번째 곡으로는 7중주로 편곡된 피아졸라의 Obilivion, 두 번째로는 Libertango가 연주되었다. 정명훈과 김선욱은 함께 연주하는 내내 교감하는 듯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고, 김수연의 폭발력은 남미 대가의 곡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의외였던 것은 양성원의 첼로가 (탱고 연주에 경험이 많은) 송영훈의 첼로보다 훨씬 유연하고도 기교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는 점이었다. 연주자 스스로 자유로이 리듬을 타는 모습 또한 진지한 그의 면모 뒤에 숨겨진 매력인 것 같아 보는 내내 흐뭇했다.

7인의 음악인들 모두 한국의 대표적 기악인들이라 그들이 함께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이벤트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실내악 연주가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따라서 활성화 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 연주회를 시작으로 더욱 많은 실내악 연주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이번 음악회에서는 김선욱과 김수연이라는 걸출한 신인들이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그들의 기량을 솔로이스트가 아닌 협주자로서 엿볼 수 있어 뜻 깊었다. 오랜만에 파워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신예들을 만나니, 덩달아 마음이 부풀어오르는 듯하다. 먹지 않아도 배 부른 며칠 간이 될 것 같다.  

2009/08/27 13:03 2009/08/27 13:03

Tacit Group Rec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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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싯그룹의 첫 번째 단독공연에 다녀왔다. 컴퓨터음악, 미디어아트하면 아직도 생소하게 생각하거나 난해하거나 심지어 (덮어놓고)혐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모든 낯선 것에 대한 처음 반응이 바로 이러한 거리 두기가 아니던가. 꾹 참고 한 번 더 기회를 주면 새삼 달라진 눈과 귀를 발견할 수 있다. 꼭 그래야만 하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지 않다. 하지만 지금껏 경험해왔던 것과 다른 선상의, 확장된 오감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당신을 기꺼이 낯섦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다.

이전 여러 영상으로 만나봤던 장재호교수님(한예종 음악테크놀로지과) DJ가재발(미디어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실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두산아트센터를 찾았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시간 동안 즉흥적 연주에 가까운 5곡을 연주(?)했다. ‘채팅이라는 한글 언어 사용 환경이 음악으로 전화되는 작품이었던 <훈민정악>, 게임의 진행상황이 음의 조합으로 연결되는 알고리즘을 선보인 <Puzzle 15>, ‘미니멀 음악의 선구자 테리 라일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어쿠스틱 악기 여러 대로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곡이지만, 53개의 악구를 랜덤으로 연주하면서도 작곡자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이중고를 감행한 <inC>, 즉흥연주와 타이포그래피의 시각화가 흥미로웠던 <Improvisation>, 마지막으로 테트리스 게임을 하며 만들어지는 블록의 모양에 따라 다른 음이 연주된 <Game over>에 이르기까지. 참신한 관객과 또는 연주자간의 인터랙션을 끌어내면서도 알고리즘 컴포지션이라는 자신들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광경이 꽤나 즐거웠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 일부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가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지고, 그 시도의 다양성 또한 셀 수 없이 다채롭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단독공연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참 반갑다. 물론 아직까지 관객규모가 크진 않지만, 잠재적으로 이 영역이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안해볼 때 태싯그룹 뿐 아니라, 또 다른 퍼포머들이 등장해 파이 자체를 키워주면 한층 공연환경이 풍성해 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CT내에서의 환경은 내게 직접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한다기 보단, 어떤 요소가 어디에 필요한지를 가늠케 하는 시각을 제공했다. 문화와 기술, 또는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접점은 실로 어마어마하지만, 그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미래의 음악, 미래의 이야기, 미래의 집은 과연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지, 나 자신조차 모르긴 하나 그를 한 번쯤 상상해 보는 작업은 현재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에게 탁 트인 시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 ‘왜 그걸 해 봐야 하지?’라는 질문보다는 한 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질문이 우리에겐 더 필요한 게 아닐까 한다. 그래야만 오늘을 뛰어넘어 볼 수 있을 테니.  

2009/08/24 00:01 2009/08/24 00:01

윤상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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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들으면 ‘OO!’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는 이러한 특성이 식상함과 동의어로 치부되었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내기까지 고루한 과정을 지나야 함을 방증한다. 지난 7일과 8일 양일 간 LG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열었던 윤상에게는 확실한 색이 있다. 너무 하드코어적이지 않은 전자음과 달달한 가사의 조화, 그리고 (여심을 포함한)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멜로디라인까지 그의 색은 한결같았다. 그러나 그의 한결같음은 판에 박힌 지루함이 아니다. 그 한결같음은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자기와의 싸움, 자신을 넘어섬과 닿아있다.

이번 콘서트를 통해 그는 자신의 클래식 넘버와 신곡, 그리고 실험정신이 담겨있는 연주를 선보였다. 여성관객층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한(?) 이번 콘서트에서는 가수 윤상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성이 따라다녔다. 이따금 음정이 불안했다는 점은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그가 스스로 전체적인 기술과 음악적 완성도를 전부 관할하고 있었다는 부분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크지 않은 무대를 층을 나누어 입체적으로 구성해 한층 시각적인 효과를 높였고, 조명과 영상 프로젝션에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사운드적인 면에서 최상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장비동원 뿐 아니라 디자인을 확실히 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한 프로정신이었다. ‘ The 1st의 스트링과 정재일과 하임 등의 세션 또한 콘서트 무대를 꽉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견이지만, 정재일은 랑랑과 맞먹는 파워를 지니고 있었다 @-@)

, 진짜 최고였어. 나도 저런 음악하고 싶다.” 콘서트가 끝나고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던 콘서트 장 앞길에서 어느 여성관객의 감동 어린 한 마디를 엿들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그러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소망까지도 일깨워 주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런 의미에서 윤상은 자신만의 문법으로 관객과의 소통에 성공한 셈이다. 나 혼자만을 위한 중얼거림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말걸기로써 말이다.   

2009/07/09 11:51 2009/07/09 11:51

<Spring Awak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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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프리미어 공연을 보고 왔다. 뮤지컬계의 블루칩 김무열과 조정석을 한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꽤나 많은 여심을 움직인 듯 했다. 아담한 규모의 두산아트홀 연강홀에는 무대 위의 자리까지 합해 거의 모든 좌석이 차 있었다.

지난 2007년 토니상 8개 부문 수상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스프링 어웨이크닝> 1891년 독일의 한 청교도적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십대 남녀의 사랑과 우정, 자유와 죽음 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다소 직접적인 묘사와 가사로 기대를 모았었다. (런던공연리뷰)한정된 공간 안에서도 다이내믹한 면모를 보이며, 잘 알려진 레파토리 하나 없었지만 중독성 있는 노래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7인으로 구성되었던 밴드도 부족함 없이 뮤지컬을 보조해가며, 꽤 성공적인 프리미어를 선보였다. 이따금 노래와 내용전개가 뚝뚝 끊어지는 듯한 부분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몰입도 높은 구성을 즐길 수 있었다.

이번 주말을 필두로 본격적인 공연에 들어가는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근처 광장시장에서 푸짐한 빈대떡으로 요기를 하고, 늦은 저녁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뮤지컬을 보러 가는 건 어떨까. (그랬더니 좋았더라는 1인의 추천코스)

2009/07/05 21:41 2009/07/05 21:41

‘感’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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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효자동의 오르겔하우스에서 열린 하우스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의 첫 번째 하우스콘서트였는데, 지인의 초대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연주자는 바로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얀센스였습니다. 리처드 용재 오닐과 유사한 배경과 루트로 한국에 알려진 음악가입니다. (관련기사) 저 또한 TV 다큐멘터리로 접했던 그의 연주를 가까이서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연찮게 좋은 기회가 와서 기뻤습니다. Heitor Villa Lobos의 에튀드나 Piazzolla Verano Porteno처럼 유명한 곡들도 좋았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와 닿았던 곡들은 정작 드니 성호가 며칠 전 직접 작곡했다는 곡들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정신적 멘토로서 관계 맺고 있다는 김목사님을 생각하며 만든 ‘Morning Flight’와 벨기에에 있을 당시 영화 <취화선>을 보고 한국의 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만들었다는 ‘Korean Mountain’은 그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선율을 타고 되살아나는 듯해 참 좋았습니다.

콘서트가 끝나고 선선한 공기가 가득했던 효자동 거리를 걸어오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술은 감동하는 힘, 그리고 공감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요. 우리가 잘 아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란 말도 아마 비슷한 맥락에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선사시대의 벽화부터 시작하여 오늘의 뉴미디어 형태의 예술에 이르기까지 순수하게 독창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있다고 해도, 그는 사람들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맥락을 지닌 창조물로서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대마다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이다라고 평가 받는 작품이나 사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 이전이나 동시대의(심지어 미래를 내다보는 것까지도,) 반동으로서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개체라 해도, 엄연히 말하자면 거시적인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예술의 성질을 이해한다면, 기본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해 감동하고, 공감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 왜 중요한 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는 예술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감성마케팅이다 뭐다 해서 큰 바람이 불었었죠? 디자인과 스토리텔링 등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기제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안에 숨어있는 본질을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입니다. 감동하는 마음, 공감하는 시각이 가진 공통점은 그 중심에 이 있다는 겁니다. 그를 바로 아는 힘이 있을 때 고객 뿐만 아니라, 가족과 적 모두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건, 어떤 일을 하건 이 놀라운 힘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게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을 자유자재로 다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를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 쉽게 감동할 줄 알고, 누구든 공감할 줄 아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기타연주를 통해 드니 성호는 제게 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습니다. 여러분도 오늘 당장이라도 쿨쿨 잠을 자고 있는 을 깨워보세요.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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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7 00:12 2009/06/07 00:12

서울재즈페스티벌 2009

서울재즈페스티벌의 세 번째 날 밤 공연. 관련기사의 말마따나 이번 페스티벌 중 가장 기대했던 가치가 있던 공연 둘을 소개하고자 한다. 장장 3시간에 이르는(인터미션 포함) 긴 공연 시간 동안 색은 다르지만,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올곧게 지켜나가는 두 명의 뮤지션을 목도했다는 것 만으로 가슴 벅찰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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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el(left) & Peyroux(right)


1부의 마들렌느 페이루는 목소리와 창법 덕에 2의 빌리 홀리데이라고 불리지만, 정작 받았던 인상은 그 보다는(스탠더드 재즈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면모의 집시와 같은 느낌이었다. 홍보용 사진에서와는 달리 수수하게 긴 머리를 땋아 내리고 자신의 낡은 기타 줄을 조심이 뜯는 모습은 영락없이 불가리아의 작은 소도시에서 만날 법한 떠돌이의 모습이었다. 음악 또한 그 모습을 닮아 소박하고 꾸밈없었는데, 각각의 노래에 대한 설명과 소소한 브릿징 멘트는 오랜 시간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며 하루를 꾸려가는 생활음악인의 면모와 흡사했다.

반면 2부의 바우터 하멜은 그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각종 진귀한 악기(?)를 늘어놓고, 미니확성기까지 동반해 다양한 실험정신을 보여주었던 그에게 젊은 팬들은(특히 정열적인 누나 팬들) 끊임없는 박수갈채를 보내기에 바빴다. 이쁘장한 외모에 어린 나이가 자칫 그의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런 인식을 공연에서 이렇게나 말끔히 씻어버릴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한 곡 한 곡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를 어떤 퍼포먼스와 함께 엮으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그야말로 몸 속에 리듬세포로 가득한 것과 같은 바우터 하멜. 특히 그는 자신의 밴드와 함께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어 관객을 환호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음악을 즐겁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적어도 관객과 직접 만들어가는 공연에서 뮤지션 자신의 것을 일방적으로 전달해주는 반쪽의 것이 아니라,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음악을 통해 당신도 즐겁게 해 드릴게요,라는 마인드로 임하는 공연.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지난 해의 크리스 보티, 그리고 이번 해의 마들렌느 페이루와 바우터 하멜. 매해 진화해가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을 보며,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내년엔 누가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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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7 15:59 2009/05/17 15:59

지휘자의 등


지휘자의 등에도 표정이 있다. 곡을 좇아가기에 급급한 등, 단원의 디테일을 놓치는 등, 지휘봉에 휘둘리는 등처럼 신기하게도 지휘자의 등에는 표정이 있다. 정명훈의 등에는 거대한 지도가 보인다. 검은 색 수트 밑에서 꿈틀거리는 근육의 봉우리와 그 사이의 질곡을 휘감아 도는 악상의 늪. 관객의 눈에 힐끔힐끔 비치는 얼굴의 주름 깊이 지독한 날들의 끝없는 고민이 번뜩이는 것 같아 서늘한 기운이 돈다. 작지만 밝은 할로겐 등 아래 너덜거리는 악보를 잡고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 트럼펫 솔로 나지막이 들어가고 점점 크레센도, 첼로 들어오고 그 뒤를 잇는 더블베이스, 탕탕-둥둥, 그리고 잠시 정적. , -하고 시작. 그의 머리 속은 이미 전쟁 중. 음과 리듬이 엉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자리를 찾는다. 또렷하기만 한 혼과는 달리, 육의 안구는 꺼풀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잠시 고개를 파묻고 일어나니 동 틀 무렵. , 또 이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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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매해 이맘때쯤 열리는 APO(Asia Philharmonic Orchestra)의 공연이 지난 7 30일 저녁 8,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있었다. 지난 해에도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연주를 보여준 지안 왕(첼로)과 일본 차세대 주자 다이신 카지모토(바이올린), 그리고 정명훈(피아노/지휘)과의 베토벤 삼중 협주곡 협연은 (복잡다다한 관계를 넘어서는) 한중일의 특별한 음악적 만남을 선사했다. (특히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번갈아 가던 마에스트로의 모습이란!!!) 언젠가 정명훈은 지휘자가 되어서 좋았던 점으로 더 이상 피아노를 직업적으로 치지 않아서 좋다라고 했다. 그 때문일까. 지난 해 바르톨리 독창회 때에 이어 이번에도 줄곧 여유 있는 연주를 보여주어 진정한 대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부에 연주된 말러 교향곡 5번은 장장 70분에 달하는 대곡으로 오케스트라의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다. 특히 관 파트의 선전으로 말러 다운 말러를 만날 수 있었던 멋진 연주였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관은 예전부터 말이 많았다.) 현의 진중한 스케일을 한껏 감상할 수 있었던(일전에도 오디오 북으로 소개한 적이 있는) 4악장 아다지에토 또한 이번 연주의 백미였다. 정명훈의 서울 시향과의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의 연주에 가기에 매번이 애틋하다. 진중함을 담은 마에스트로의 등과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으며.    

2008/08/01 11:26 2008/08/01 11:26

닥터 이라부 – 현대라는 정신병

 얼마 전 중앙일보 기사에서 서울대 도서관과 하버드대 도서관의 최다대출도서 목록을 비교한 적이 있었다. 미국의 명문대학생들은 고전(古典)을 즐겨 읽는데 반해,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현대작품을 더 선호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덧붙여 고전에서 해답을 찾는 미국의 대학문화에 조금 더 점수를 얹어주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 비교도표에서 미국 대학생의 1위 선호도서로 꼽힌 조지 오웰의 ‘1984’에 대적했던 한국 대학생의(물론 서울대 도서관내) 1위 선호도서는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였다. 오쿠다 히데오를 오늘의, 일본의 조지 오웰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겠지만, 그 유명세나 발행부수로는 누구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거물작가로 거듭났음에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접한 오쿠다 히데오의 책은 남쪽으로 튀어였다. 빠른 사건 전개와 무거운 사회적 이슈를 가볍게(사안 자체를 가볍게 만든다고 해서 내공까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닌) 터치하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인물들의 심리적 갈등을 극한까지 치닫고 가는 재주와 끈기도 내비치면서 말랑하기만 했던 일본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가가 등장했다고 여겼었다. 이후 가벼운 문고판으로 재발행된 면장선거를 접하면서 닥터 이라부라는 인물을 처음 소개받았고, 거부할 수 없는 단단한 캐릭터가 발굴되었음에 (과장 조금 보태어) 잠시 졸도했었다.

 

 순서가 조금 뒤바뀌긴 했지만, 처음 닥터 이라부가 등장했던 건 공중그네의 에피소드들을 통해서였고, 이후 후속작인 인더풀’, 그리고 면장선거를 통해 오쿠다 히데오는 연속적으로 닥터 이라부의 존재감을 공고히 했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누가 환자이고 누가 의사인지 모를 성격의 닥터 이라부의 여러 에피소드를 무대 위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는 생각에 부슬거리는 빗방울을 뚫고 대학로로 향했고, 뽀글거리는 파마머리의 주인공 닥터 이라부는 역시나 정신 없는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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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정신병

 

  이 시대를, 21세기를 살아간다는 건, 어떻게 보든 미친 짓이다. 굳이 정보의 홍수니 무한경쟁시대니 하는 사회학적인 용어를 들이대지않더라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그 어떤 시대보다 힘겨워졌다. 누구든 필사적으로 돈 벌고, 필사적으로 심심해하고, 필사적으로 뒤틀려있다. 마치 이 현대의 동의어는 필사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병적으로 깊이 물들어있는 시대가 바로 (안타깝게도) 우리의 오늘이라는 것이다. 정신과란 비단 정신병이 있는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닌, ‘돈 많고, (어쩌면 그래서) 걱정 많은 사람이 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공식적인 병력(혹은 병과기록)이 없다 해도 오늘을 사는 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다 크고 작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말도 과장은 아니다. 그만큼 모두 멀쩡해 보이지만그저 멀쩡하다고 믿고 싶을 뿐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닥터 이라부는 바로 이러한 현대의 모순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쉴 새 없이 정신 없는 말들을 뱉어내면서도 간간히 환자의 허를 짚는 지적을 하면서 대체 뭐가 진료이고 어디까지가 놀이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극중 닥터 이라부는 환자들에게 (케이스 별로) ‘충격요법이니 역치료니 하는 의학용어들로 권위를 세우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이라부의 모습은 자신을(더 정확히 말해 의사라는 자신의 권위를) 희화화할 뿐, 그 이상의 효과를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놀라운 건, 바로 그 자신도 그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이라부는 치료를 놀이(유희)라고 여기고, 그 안에서 환자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개별적이면서도 총체적인 변수를 이리 저리 놓아가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고도의 체스를 둔다. 과거처럼 A’에 대해 A’라는 식의 처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감기도 복잡한 불치병도 예컨대 모두 스트레스에서 출발한다고 보는 현대인의 병적 진화(!)에 깊이 동감한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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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대하여

 

 오픈 런으로 진행되는 투비 컴퍼니닥터 이라부’(2)에서 닥터 이라부 역의 구도균이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 극 전면에 인물의 이름을 내세운다는 것은 극의 중심축 역할이 누구에게 달려있는지를 1000% 전제하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자나 출연자 모두 극에 앞서 닥터 이라부한국 실정에 맞게, 그리고 연극에 맞게 많은 부분 각색되었음을 알렸다. 물론 일본의 실정과 우리의 실정이 다르고, 소설과 극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요소는 상반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소설 속의 이라부를 먼저 접하고 온 관객이라면 조금 더 괴짜 같은 닥터 이라부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한다. ‘닥터 이라부라는 인물은 단 몇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인물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낄낄거리고, 코너에 몰렸다 싶으면 간호사인 마유미짱을 한껏 불러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에게는 질퍽한 사회상에 적잖게 상처 받은 패잔병(개인)을 때리고 욕하거나 비꼬고 놀리기도 하면서 이라부 식 위안을 주기도 한다. 언뜻 보면 정신을 놓아 버린것 같지만, 그 어지러운 외면 가운데서도 한 가닥 날카로운 통찰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 구겨 넣어도몇 초간 그 모양새를 유지했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는 만득이같은 면모가 있는 것이다. 배우 구도균은 자신의 코믹한 외모와 특유의 혀 짧은 소리를 전적으로 이용해 어디가 웃음의 유발지점인지를 고도로 훈련시킨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이는 매우 큰 자산이다. 그러나 극중 인물의, 특히 닥터 이라부와 같이 입체적인 인물은 연기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극보다 코믹극이 훨씬 어렵다고 하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니듯이, 유머를 가장한 페이소스를 전달함이 가능해야 한다. 극이나 배우들 모두 초반에는 관객과의 커넥션을 잡는 데 다소 미끌어지는경향을 보였지만, 이내 안정세를 타고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세 에피소드를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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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매스컴에서 또한 문학계에서 왜 오쿠다 히데오가 이렇게 주목을 받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8년 전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젊은 세대를 휩쓸고 갔을 때와 엇비슷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당장 이 열기에 동승하기 보단,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내막이 조금 더 환히 보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밀레니엄 초입에 불안하고 무기력증에 빠졌던 개인이 자력을 찾아가고 생존감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한걸음 나아가 개인과 개인, 사회와 개인 간의 소통을 재개하려는 움직임, 포스트모던 이후의 또 다른 형태의 연대의식, 의사개진과 참여에 대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과 그 안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함의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대중을(그들의 취향을) 답습하기 보단, 그보다 자신이 믿고 바라보는 대중상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는 것이 마음을 끌어당기는 문학적 자기력을 형성하게 된 것 같다. 오쿠다 히데오의 팬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 ‘닥터 이라부의 팬은 되어 줄 의향이 있다. (그대도 동참하시길.)

2008/07/03 12:20 2008/07/03 12:20

클래식형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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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필의 새 지휘자, 야닉 네제-세겐



넉넉잡고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의 역사를 따져본다면 11세기 정도가 된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기원을 9세기부터라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클래식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워낙 역사와 문화를 걸쳐 다양한 층을 형성해 왔기 때문에 어떤 게 클래식이냐?’고 질문했을 때, 한 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지만, 실제 순수하게 언어 자체 만으로 두고 본다면 ‘Classic’‘Classical’ 간에는 어느 정도의 의미 차가 있다. 전자는 일류(작품) 혹은 고전 자체를 지칭하는 단어이며, 후자는 되려 그를 수식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기에 그 자체 만으로는 온전한 단어로 사용되기 힘들다.)

 

이런 클래식 음악계(이하 클래식 계)에서 십 수년 전부터 대두되었던 문제가 미래의 클래식이다. 이는 신문의 종말과 유사한 문제로 물론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 가야 한다는 내외부의 압력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메이저 레이블 사를 중심으로 하는 스타 마케팅과 POP이나 MTV등과 같은 대중적 장르 혹은 채널과의 제휴는 팔리는 클래식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관련 업계와 클래식 음악가들의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펼쳐진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로테르담 필)의 내한 공연은 이러한 클래식 계의 변모하는 스펙트럼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랑랑과 더불어 지난 해에 이어 올해 다시 내한한 윤디 리(Yundi Li)와의 협연은 다분히 이벤트적인 면모가 돋보였고, 오는 8월 로테르담 필에 음악감독으로 정식 취임하는 젊은 지휘자 야닉 네제-세겐(Yannick Nezet-Seguin)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난 해, 윤디 리 공연에 대한 리뷰 링크)  

 

언론에서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지만 이미 유럽 음악계에서는 두스타보 두다멜(27),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36), 다니엘 하딩(33), 필리프 조르당(34) 등의 젊은 2,30대 지휘자들이 대거 등장한 데에 있어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디오 만큼이나 비주얼이 중요해진 이상,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그들의 화려한 외모 혹은 에너제틱한 연주모습), 음악회 실황 뿐 아니라 다양한 DVD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무한한 영감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젊은 연주자들의 등장이 반가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오히려 동양권에서보다 서양권에서 클래식이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 받고, 고리타분한 음악으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이와 같은 젊은 피(!)를 활용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보인다.  

 

라벨의 ‘La Valse’를 시작으로 윤디 리와 함께한 프로코피에프의 ‘Piano Concerto No.2 in G minor op.16’, 그리고 마지막 작품으로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Symphony No.5 in D minor, op.47’에 이르기까지 이번 로테르담 필의 프로그램은 다소 격정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인상을 안겨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례도 흐트러지지 않고 온몸으로 지휘한(!) 네제-세겐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로테르담 필의 잠재성이 청각의 촉을 타고 흐르는 듯 했다. 불안한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드라마틱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통해서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근현대로부터 그 이전의 시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음악적 여정의 신호탄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아니면 그 이상의 큰 그림이 숨어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의 리드미컬한 지휘봉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회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초반까지만 해도 네제-세겐의 진두지휘에 뚱했던 관중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의 4악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와 함께 연신 브라보를 외쳐댔다. 아직 앳된 모습이 가시지 않은 젊은 지휘자의 얼굴 뒤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의 무게와 이해의 연륜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젊은 것은 늘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 것보다는 좋은 것이 많다고 느껴지는 때다. 그렇기에 이 젊은 지휘자의 서른 넷이 염려스럽기 보단 이유 없이 두근거린다. (연합뉴스 공연관련 기사)   



2008/06/26 23:58 2008/06/26 2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