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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6  Beyond the Boundaries

Beyond the Bound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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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들>의 주인공_루이(좌)와 미리(우)


최근 하마스 세력을 소탕하려는 이스라엘 정부의 무자비하기까지 한 무력행사를 보고, 머나먼 땅 우리에게 이스라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평화로운 일상 곳곳에 언제 터질지 모를 전운이 감돈다는 것은 분명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신경의 반경, 그 너머의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단순히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생이 한 대 먼저 쳤으니, 나도 너를 치겠다는 식으로는-도저히 그 어마어마한 사태를 이해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언제 어떻게 해결 가능한 문제인지도 모르고, 비극이라는 단어 이외에 이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있는 지도 모른다. 모든 싸움, 그리고 모든 전쟁이 그렇듯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해지는 접경에서 그에 가담한 이들은 인간의 무감각한 성질에, 폭력을 뛰어넘는 그 이유에 넌더리를 칠 것이다. 결국 칸트는 설 자리를 잃고, 홉스의 망령만이 스멀스멀 피어나리라.

그러나 상황에 대한 이해는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지난 해 개봉했던 아일레트 메나헤미 감독의 <누들>은 전쟁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미리)이 겪은 삶의 참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잔인한 일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그녀가 얼떨결에 맡게 된 중국인 소년(루이)과 조금씩 가까워질 무렵, 너무나 간단한 제스처로 그녀의 가족의 죽음에 대해 설명할 수 밖에 없었던 장면은 그들에게 당연한현실이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질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남편과 두 번째 남편, 그리고 남겨졌던 두 명의 아이들의 목숨까지 앗아간 전쟁을 겪으면서도 그 땅(이스라엘)에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운명. 그들에게 있어 희망은, 그리고 평화란 무엇일까.

보통의 사람들은 이라 명명한 대상을 죽도록 증오하며 살아간다. 결국 그 증오가 복수라는 바깥의 피를 부르기도 하고, 체념이라는 안의 피를 흘리기도 한다. 꼭 십 년 전에 들었던 정당한 전쟁은 있는가라는 정치철학 세미나가 문득 떠오른다. 그 중에 그 누구도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렇게도) ‘쉽게전쟁에 대해 떠들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고, 중재자는 그저 중재자일 뿐이다. ‘이성의 위기라고 굳이 떠들지 않아도, 인류의 이성이 마비되었음은 오래 전 일임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 <누들>에서처럼 전시상황에서도 생각하기 힘든 방법으로 기적이 일어난다. 세상이 그어놓은 경계를 넘어, 그렇게 말이다.   

2009/01/06 22:39 2009/01/06 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