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영웅
미국의 블록버스터가 변하고 있다고 예견된 건, <다크 나이트> 개봉 훨씬 전부터의 일이었다. 심플하기 짝이 없는 ‘권선징악’의 거대명제 아래 볼거리만 풍성하면 빈약한 서사도 다 덮어주겠다던 것이 미 블록버스터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으로 이어지는 코믹북 영웅 계보에도 이와 같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쳐 ‘영웅 서사의 진화’가 이상 징후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각각 ‘영웅’으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변종’이 된 계기는 각기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의 힘으로(법, 치안, 공권력 등등)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는 공동체의 안녕을 21세기적 켄타우루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에게 일임하는 식의 극 설정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스파이더맨 3>에서 보여진 바 있지만, 무조건적으로 추앙 받았던 ‘영웅’은 더 이상 절대 선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자신이 지키고자 노력해 왔던 가치들과 절대 선의 문제에 대해 반문한다. 원론적이지만,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절대 선은 존재할 수 있는가’하고.

<다크 나이트>는 여러모로 기대가 많았던 작품이었다. 故 히스 레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면에서나 영원한 조각남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로운 배트맨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기대심리에서나 <다크 나이트>의 개봉을 앞두고 밤잠 설칠 이유는 꽤나 많아 보였다. 대형 포털의 거의 만점에 가까운 별점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 나이트>에 대해서 약간은 염려스러운 시각을 던져볼까 한다. 누구나 이미 백만번쯤은 이야기했든, 조커 역의 히스 레저는 ‘살아있는 조커’의 모습을 완벽 그 이상으로 재현해 내었고, 외모로 차가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크리스찬 베일은 배트맨 중 최고였다고까지는 못할 망정 2등 정도는 되었다. (사담이지만, 그의 최고작은 뭐니뭐니해도 <아메리칸 싸이코>가 아닐까.) 배트맨의 연구소는 돈 냄새를 하도 풍겨 관객의 후각이 마비될 정도였고, 건물 몇 개, 도시 하나 쯤은 뻥뻥하고 초토화시키는 영상은 블록버스터 상위권 안에는 안정적으로 안착할 듯 보였다.
그러나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가면 쓴 영웅을 필요로 하는가. 더 디테일하게 질문하자면, 우리는 고민하는 가면 쓴 영웅을 필요로 하는가. 대답은, 글쎄요,다. 예를 들어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시스템의 최고 선에 대해 도전하는 류와 ‘배트맨’은 시작점부터가 다르다. ‘본’의 고민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배트맨’의 고민은 글쎄. 후작을 만들어 내려다 보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는 듯 하다. 세계가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홉스가 장담했던 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구도로 나아가는 가운데 ‘배트맨’과 같은 초월적 수호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했을 법하다. 그러나 그 고민은 제작자와 감독의 것이지, 그를 직접적으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서사를 통해 드러났어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커가 왜 끊임없이 살상을 저지르고 파괴를 일삼는지에 대한 이유는 전혀 설명해 주지 않으면서 배트맨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선의 개념’에 대해서 원초적인 물음을 던지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는 어떻게 보면 ‘악’의 개념은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그의 절대성을 인정해주는 대신 ‘선’의 개념은 ‘선한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악을 낳으면 그것도 선인가’하는 식의 사고로 상대적으로 추락시키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허술한 논리로 ‘배트맨’이 됐을 거면, 애초부터 만들어내지 말지 그랬냐는 비판도 종종 들린다.)

‘슈퍼맨’, ‘스파이더 맨’과 더불어 ‘배트맨’에서 공통적으로 관객이 느꼈던 카타르시스는 바로 초인이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담고 있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는 조커가 지적하는 바대로 ‘너 같은 변종은 나와 같은 존재야’라고 반격당하기에 좋은 부분이기도 하다. 즉, 영웅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를 추종하며 그의 보호 아래 있었던 다수의 사람들은 요동하기 시작한다. 그의 존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있어야만 완전해질 수 있는 구조’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OO맨’하는 류의 미국 영웅이 철저히 인간의 시점으로 돌아와 ‘선에는 반드시 희생이 뒤따라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모습이 (이해는 십분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언젠가 정치철학 세미나 때 ‘정당한 전쟁은 있는가’란 질문을 던졌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선이든 악이든 하나의 행위로 인해 파생하는 결과는 늘 양면적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선 다면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는 (모순이지만) 선택적이면서도 비선택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말인 즉, 그가 예측가능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왜 배트맨은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가. 죽이지 못하는 것이 절대 선인가. 아니면 절대 악으로 상징되는 그를 제거하는 것이 절대 선인가.’라는 질문)
고민하는 영웅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리고 인간적인 영웅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은 달달하면서도 쌉쌀하다. 영웅을 섣불리 ‘짬짜면’면으로 만들게 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냥 단순명료했던 옛날의 촌스런 영웅이 그립다. (사는 것도 복잡해 죽겠는데, 왜 영웅까지 복잡하고 난리야!)
대부분 관객들은 드디어 벗겨진 영웅의 진실 - 나도 사실은 고민이 너무 많다능 - 이
무척 반가운 모양이던데요. ^^
ㅎㅎㅎ 그렇군요.
역시 어떻게 보면 지난 '놈놈놈' 리뷰때도 그랬지만,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만나는 게 더 재밌는 거 같습니다:)
(저도 물론 기본적으로는 재밌게 봤지만, 의외로 약간 늘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흠칫! 놀랐답니다. 허거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