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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9/25  엿듣는 소리 (2)
  2. 2009/09/07  그가 보고 싶을 땐 순댓국 집에 간다 (1)
  3. 2009/08/31  Summer Interior
  4. 2009/04/27  [소품 그리고#1] 누군가의 책상

엿듣는 소리

오랜만에 신촌에 나왔다. 홍대로 가는 길목에서 요기나 할 요량으로 벅적거리는 맥도널드에 들어섰다. 간단히 주문을 하고 나서 앉을 자리를 찾았지만, 넘쳐나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었던 가여운 종업원들이 매장을 방치(!)해 두는 바람에 잠시 몸을 기댈 곳은 쉬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야말로 시장바닥과도 같은 곳에 두둥실 유영하고 있는 섬과 같은 테이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겨우 앉았는데, . 액션페인팅에 버금가는 케첩의 흔적이란! 가까스로 사정권 밖으로 몸을 붙이고는 약속시간 전까지 다 읽어야만 하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물론 책이 잘 읽힐리는 없었다. 제 아무리 MTV와 함께, 워크맨과 함께 자라난 세대라 할지라도 주변의 부산함이 방사형으로 확대되는 곳에서 무언가에, 그것도 활자에 집중한 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었는지 모른다. 허니머스터드의 양 조절에 실패한 치킨랩을 쟁반 한 구석에 방치한 채, 눅눅한 감이 드는 감자튀김을 하나 둘씩 빼내는 손길에 남은 선택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두꺼운 장편소설을 왼손 가득 집어 들고 식어버린 감자튀김을 질겅거리자니,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착잡해지는 심정마저 들었다. 책 내용은 사방을 튀어 다니고, 주변의 소리는 귓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냥 대놓고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그것밖에는 이 곳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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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편, 빅맥세트를 마주하며 먹고 있는 남성 둘, 힙합 차림을 한 대학 2-3학년생, 미필자로 추정

1: 정말 이번엔 막 열정이 솟구쳐. 한 번 진짜 잘해보고 싶다니깐.

2: 그래, 너라도 그래야지.

1: 네 옛날 모습이 딱 내 지금이지 않냐?

2: 그래. 그럴 때가 좋은 거야.

1: . 난 안무가 아니라 노래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어.

2: 하긴. 노래 선정이 쉽진 않지.

1: 그거 들어봤냐? 완전 비트가 없으니깐 뭔가 맞추기도 어렵고.

2: 그래도 요즘 트렌드가 그거던데. 옛날처럼 꼭 비트가 따따따-따따, 하면서 들어갈 필요는 없는 거 같아.

#왼편,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바스락거리며 먹고 있는 여성 둘, 늘씬한 키에 여성스러운 차림, 대학생으로 추정

1: , 진짜 완전 짜증나, 동아리 언니.

2: ? 또 남자들한테 들이대?

1: 내가 솔직히 그 언니 좀 싫어하거든.

2: 진짜?

1: 아니. 뭐 싫어한다기 보단. 그냥 평소엔 괜찮은데, 술 먹은 그 언니가 완전 싫어.

2: 왜 어떤데?

1: 아니, 자기는 막 기억 하나도 안 난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게 어떻게 기억이 안 나냐? 술 먹으면 남자 대하는 게 좀 짜증나. 자기가 완전 오해하게 행동하면서. 딱 보면 마음 있는 것처럼 굴거든.

2: 근데 아니래?

1: . 그래서 우리 동아리 오빠들 몇 명 다 오바했잖아. 완전 좀 짜증나.

까페나 지하철, 또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엿듣게 되는 소리는 즐겁다. 굳이 서로 알지 못해도 보여주기에 들여다보기에 급급한 소셜 네트워크서비스가 판치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우연을 가장한 순간을 포착하는 게 더 스릴 있고 농도 짙다. 흘끔흘끔 쳐다보며 안 그런 척, 시선은 책을 향해 있지만 귀는 쫑긋 세운 채 듣게 되는 무명씨의 이야기들. 오덕후스런 관음증이라해도 좋다. 인간의 본성은 금기시된 것들 너머로 오가기 마련이니. 그런 의미에서-조금 더 귀 기울이셔도 좋습니다. 

2009/09/25 00:23 2009/09/25 00:23

그가 보고 싶을 땐 순댓국 집에 간다

살아가면서 굳이 먹는 음식안 먹는 음식으로 편을 가른다는 게 필요할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앞에 어떤 부사가 오느냐에 따라서 의미도 천지차이인데. (예를 들면, ‘무조건 먹는 음식’, ‘무조건 안 먹는 음식’, ‘자주 먹는 음식자주 안 먹는 음식등등) 세상의 모든 음식을 늘어놓고 보면 그 도식에 나머지 없이 맞아 떨어지기 보단, 경계에 애매하게 서 있는 게 더 많은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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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himnii.tistory.com/2


내게도 분명 순댓국은 (안 먹어 보았기에)‘안 먹는 음식으로 분류됐었다. 그러나 순댓국을 좋아했던 가 있었기에 순댓국은 안 먹는 음식에서 먹는 음식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이 되었다.

며칠 전, 그가 보고 싶은 마음에 순댓국 집에 갔다. 허름한 가게 안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반주를 곁들이고 있었다. 젊은 여자 혼자 들어와 씩씩하게 순댓국 한 그릇이요!”라고 외치는 광경이 꽤나 낯설었는지, 흰머리 부대는 내 쪽을 힐끔거렸다.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자니 내심 민망해 손에 쥐어 들고 왔던 얇은 잡지 한 권을 펼쳤다. 오늘의 운세.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시오. 노자처럼 생긴 도사라도 나타나 인생의 참 지혜랍시고 속닥거리는 듯했다. 돌아보면 그랬다. 촘촘히 짜여진 네트워크마냥 간격을 맞추어 놓는다고 해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었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선물처럼 주어졌다. 비약이 심하지만, 순댓국은 그런 선물 같은 존재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던 순간순간이 예상치 못했던 기쁨이 아니었던가.

보글보글 끓어오른 김을 내뿜으며 순댓국이 등장했다. 불지도 않고 한 입 덥석 후르륵 마셨더니 순간 입천장에 불이 나는 듯 했다. , 생각보다 맛이 없네. 아직 첫 입이라 그런가. 삼분의 일을 다 비우는 그 순간까지도 그와 먹던 순댓국 맛은 나지 않았다. 같은 가게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래, 그런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와 함께이지 않아서 일 게다. 에휴, 그 맛이 아니네. 먹성은 먹성인지라 거의 그릇을 비우긴 했지만, 속 안이 허전했다. 그가 보고 싶을 때 순댓국 집에 또 가게 될까? 대답은 글쎄다. 같이라면 모를까, 혼자는 영 그렇다. 최소한 순댓국이라면.   

2009/09/07 16:18 2009/09/07 16:18

Summer Inter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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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Hopper, Summer Interior, 1909


여름의 끝. 그건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숫자의 조합 속에 계절을 가둬놓았다.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의 속성을 알면서도 굳이 일차원 상의 처음과 마지막을 정해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무서웠던 것인가. 지금을 살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나 자신의 존재조차 의심스러울 것 같아서, 그래서? 진짜로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존재함의 고독함과 맞닥뜨릴 때,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어딘가로 내몰렸을 때 스포트라이트는 잔인한 기승을 부린다. 낯설지 않아야 될 것들을 잊게 만드는 정신 없는 21세기 안에 기능주의의 아편을 맞으며 하루하루를 버텨보지만, 언제까지 갈까. 끝을 알 수 없는 여름은 그렇게 조용히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일어서 힘조차 없다.

2009/08/31 00:03 2009/08/31 00:03

[소품 그리고#1] 누군가의 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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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 by b


요즘 들어선 사물에서도 표정이 읽힌다. ‘삼순이가 언젠가 그랬듯, 수줍어하는 후미 등이 존재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책상을 보면 그 사람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보인다. ()가 읽는 책, ()가 마시는 차, ()가 어지른 듯한 메모와 낙서들. 그 가운데서 존재를 가늠해 보는 것은 마치 스스로 탐정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2009/04/27 23:11 2009/04/27 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