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보고 싶을 땐 순댓국 집에 간다
살아가면서 굳이 ‘먹는 음식’과
‘안 먹는 음식’으로 편을 가른다는 게 필요할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앞에 어떤 부사가 오느냐에 따라서 의미도
천지차이인데. (예를 들면, ‘무조건 먹는 음식’, ‘무조건 안 먹는 음식’, ‘자주 먹는 음식’과 ‘자주 안 먹는 음식’ 등등) 세상의 모든 음식을 늘어놓고 보면 그 도식에 나머지 없이 맞아 떨어지기 보단,
경계에 애매하게 서 있는 게 더 많은 것 같지 않은가.
출처: http://chimnii.tistory.com/2
내게도 분명 순댓국은 (안 먹어 보았기에)‘안 먹는 음식’으로 분류됐었다. 그러나 순댓국을 좋아했던 ‘그’가 있었기에 순댓국은 ‘안 먹는 음식’에서 ‘먹는 음식’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이 되었다.
며칠 전, 그가 보고 싶은 마음에 순댓국 집에 갔다. 허름한 가게 안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반주를 곁들이고 있었다. 젊은 여자 혼자 들어와 씩씩하게 “순댓국 한 그릇이요!”라고 외치는 광경이 꽤나 낯설었는지, 흰머리 부대는 내 쪽을 힐끔거렸다.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자니 내심 민망해 손에 쥐어 들고 왔던 얇은 잡지 한 권을 펼쳤다. 오늘의 운세.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시오. 노자처럼 생긴 도사라도 나타나 인생의 참 지혜랍시고 속닥거리는 듯했다. 돌아보면 그랬다. 촘촘히 짜여진 네트워크마냥 간격을 맞추어 놓는다고 해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었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선물처럼 주어졌다. 비약이 심하지만, 순댓국은 그런 선물 같은 존재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던 순간순간이 예상치 못했던 기쁨이 아니었던가.
보글보글 끓어오른 김을 내뿜으며 순댓국이 등장했다. 불지도 않고 한 입 덥석 후르륵 마셨더니 순간 입천장에 불이 나는 듯 했다. 아, 생각보다 맛이 없네. 아직 첫 입이라 그런가. 삼분의 일을 다 비우는 그 순간까지도 그와 먹던 ‘순댓국 맛’은 나지 않았다. 같은 가게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래, 그런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와 함께이지 않아서 일 게다. 에휴, 그 맛이 아니네. 먹성은 먹성인지라 거의 그릇을 비우긴 했지만, 속 안이 허전했다. 그가 보고 싶을 때 순댓국 집에 또 가게 될까? 대답은 글쎄다. 같이라면 모를까, 혼자는 영 그렇다. 최소한 순댓국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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