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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6/01  죄에 묻다
  2. 2009/05/26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2)

죄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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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어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hamartia과녁을 벗어나다는 뜻으로 오늘날 통용되는 죄의 뜻과는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백과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현대적 의미에서의 죄란 국가나 사회 ·교단()과 같은 집단이 규범()으로서 인정하는 법칙에 어긋나고 그것의 결과로서, 규범을 위반한 사람에게 벌을 가하게 되는 행위나 태도의 일반적 명칭을 뜻한다. 국가와 같은 사회적 집단의 단위가 정착되고, 그 안에서의 일련의 규칙들이 공익과 공영을 위한 최우선순위로 등극하기 시작하면서, 정죄 또는 단죄와 같은 행위들이 자연스레 나타났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발칙하게 상상해 봄직한 일은, 대체 누가 누구의 죄를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물론 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은 중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냐는 비아냥과 함께, 사회 최고의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쯤으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최고의 선을 보장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내밀하고도 주요한 부분이 의학과 법학일진데, 그 두 분야 가운데서 완전한 인간의 행위가 가능하기는 하단 말인가. 무조건적으로 그 반대방향을 따라, 모든 것을 와해시키자는 극단적인 주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불온전한 속성으로 인한 사각지대를 어떻게 풀어나갈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존 크리울리 감독의 2007년작 <보이 A>는 어린 시절 우발적인 살인사건으로 가해자로 낙인 찍힌 한 소년이 성장하여 재사회화를 겪는 여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실제 영국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남자주인공의 탁월한 연기와 연출로 크게 인정받은 작품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그 어느 편도 들지 않은 채, 공정한 시선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한 번의 죄로(영화는 주인공이 직접 범행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 있었을 뿐이라는 암시를 던진다) 호된 대가를 치러야 했던 주인공이 성장한 후 사회에 첫발을 내 딛고, 끊임없는 자기의심에서부터 벗어나려는 과정은 참으로 눈물겹다. 어느덧 사회 안의 구성원으로 어엿한 모습을 꾸며가던 그에게 주홍글씨의 악령이 되살아나고, 그의 곁에 머물던 이들은 금새 그에게 등을 돌린다. 가족과 친구 모두에게서 버림받고, ‘악마로 호명되며 살아가는 그에게 더 이상 갈 곳은 없는 것인가. ‘보이 A’라는 가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눈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악몽에서 벗어나려 했던 스물 중반의 청년에게, ‘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잔인한 인식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에 대한 개념은 허공에 떠도는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닌,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죄인을 만들어내는데 탁월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변모해왔다. 주홍글씨, 마녀사냥, 매카시즘 등. 모든 것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죄의 기준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칼날이다. 죄란 논리에 의해 삶과 죽음, 때로는 더한 고통도 더해진다. 그러나 본질을 꿰뚫는다면 그 어떤 것도 죄로 완벽히 설명할 수 없으며, 죄로 무언가를 교화시키거나 공포심을 조장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허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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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23:00 2009/06/01 23:00

당신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자신이 가깝게 알고 있다는 이와 순간 연락이 끊어진 적이 있는가. ()의 주소, 이메일, 핸드폰 번호,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장소 등등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아 전전긍긍하는가. 행방의 여부는 둘째치고, ()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는 않는가. 오해와 착각은 (적어도 지구라는 행성 내에서는) 고도의 지능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인간 고유의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동시에 이는 인간의 이성이 비단 발전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은 내가 보고 있는 것 이외에는 못 본다라는 뜻이 된다. 같은 논리로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이외에는 알지 못한다는 게 된다. 결국 본다에서 파생된 착각과 안다에서 파생된 오해가 빚는 파급효과라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는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위의 에피소드는 이와 같은 인지와 이해의 양면성(또는 그 허수를) 보여주는 실례이다. 그러니 결론은 인간이여, 오만해 지지 말라”! 실제 당신은 그 무엇도,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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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는 한 가족의 파멸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파멸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들(어머니의 죽음이나 아들의 죽음 등)이 아닌,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아들은 자신이 모든 상황을 잘 컨트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아들은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여기고, 한 아내는 자신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현실, 믿고자 하는 사실에만 근거해 작은 사건을 계획하지만, 그 사건은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가 등장하고, 모두가 코너에 몰리고, 적잖이 당황하고, 감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친다. 그리고 이 모든 잔혹한 결말의 근원은 나는 다 알고 있다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정사실화되어버린, 신화화 되어버린, 무시무시한 가정에서부터.

그러니 적어도 내 상황만큼은, 나 자신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 마라. 문제는 무흠무결한 상태에서 시작된다. ‘100프로 세이프하다고 여기는 순간 어긋나기 시작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그게 세상의 이치. 그렇다고 벌벌 길 것 까지는 없다.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 만사에 오만한 일, 나는 예외일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서부터 의식적으로 벗어나야만 한다. 그것만이 예측할 수 없는 사건사고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최소한의 기제다.

p.s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살을 뺄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긴 그 자신감에 반한 팬들이 많으니, 굳이 과감한 체중감량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연기 하나는 끝내주니깐, 투실한 살집도 내공의 펌프가 된다. 왕년의 꽃미남 에단 호크가 몰라보게 살이 빠진 것은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성격의 행크역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가여운 외모를 가질 법도 하다. 연기? , 거의 정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생긴 배우는 연기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통설도 다 옛말이다. 팔방미인이 판 치는 세상이다. ‘지니역의 마리사 토메이는 얼마 전 <더 레슬러>에서도 으로 열연하더니, 이번 영화에서도 육탄전을 마다치 않는다. 64년생이라는 걸 감안하면, 경의에 찬 박수를 보낸다.

2009/05/26 12:16 2009/05/26 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