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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9/07  그가 보고 싶을 땐 순댓국 집에 간다 (1)
  2. 2009/09/02  인디언의 후예들
  3. 2009/06/21  꾼의 변
  4. 2009/06/14  번뜩이는 찰나
  5. 2009/06/08  툭하면
  6. 2009/05/31  걷는 데이트
  7. 2009/03/31  3 Reasons To Leave
  8. 2008/10/16  HOOK (3)
  9. 2008/10/11  짤막단상
  10. 2008/09/20  Anger in You

그가 보고 싶을 땐 순댓국 집에 간다

살아가면서 굳이 먹는 음식안 먹는 음식으로 편을 가른다는 게 필요할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 앞에 어떤 부사가 오느냐에 따라서 의미도 천지차이인데. (예를 들면, ‘무조건 먹는 음식’, ‘무조건 안 먹는 음식’, ‘자주 먹는 음식자주 안 먹는 음식등등) 세상의 모든 음식을 늘어놓고 보면 그 도식에 나머지 없이 맞아 떨어지기 보단, 경계에 애매하게 서 있는 게 더 많은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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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himnii.tistory.com/2


내게도 분명 순댓국은 (안 먹어 보았기에)‘안 먹는 음식으로 분류됐었다. 그러나 순댓국을 좋아했던 가 있었기에 순댓국은 안 먹는 음식에서 먹는 음식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이 되었다.

며칠 전, 그가 보고 싶은 마음에 순댓국 집에 갔다. 허름한 가게 안에는 희끗희끗한 머리의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반주를 곁들이고 있었다. 젊은 여자 혼자 들어와 씩씩하게 순댓국 한 그릇이요!”라고 외치는 광경이 꽤나 낯설었는지, 흰머리 부대는 내 쪽을 힐끔거렸다.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자니 내심 민망해 손에 쥐어 들고 왔던 얇은 잡지 한 권을 펼쳤다. 오늘의 운세.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시오. 노자처럼 생긴 도사라도 나타나 인생의 참 지혜랍시고 속닥거리는 듯했다. 돌아보면 그랬다. 촘촘히 짜여진 네트워크마냥 간격을 맞추어 놓는다고 해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노력해도 안 될 때가 있었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선물처럼 주어졌다. 비약이 심하지만, 순댓국은 그런 선물 같은 존재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던 순간순간이 예상치 못했던 기쁨이 아니었던가.

보글보글 끓어오른 김을 내뿜으며 순댓국이 등장했다. 불지도 않고 한 입 덥석 후르륵 마셨더니 순간 입천장에 불이 나는 듯 했다. , 생각보다 맛이 없네. 아직 첫 입이라 그런가. 삼분의 일을 다 비우는 그 순간까지도 그와 먹던 순댓국 맛은 나지 않았다. 같은 가게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래, 그런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와 함께이지 않아서 일 게다. 에휴, 그 맛이 아니네. 먹성은 먹성인지라 거의 그릇을 비우긴 했지만, 속 안이 허전했다. 그가 보고 싶을 때 순댓국 집에 또 가게 될까? 대답은 글쎄다. 같이라면 모를까, 혼자는 영 그렇다. 최소한 순댓국이라면.   

2009/09/07 16:18 2009/09/07 16:18

인디언의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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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들른 한 고속도로의 휴게소 입구에서 눈길을 끄는 공연그룹을 만날 수 있었다. “아파치족의 후예들이 왔다라는 슬로건 아래 진짜 인디언(American Indians)으로 보이는 이들이 한창 공연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한 쪽 손에는 호떡이며, 핫바며 먹을 것을 잔뜩 든 행인들이 기웃거리며 그들을 지켜보았고, 무대가 아닌 통행입구 중앙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인디언 음악(으로 추정되는)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직접 사진을 찍고 싶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핸드폰을 가방 깊숙이 넣어버렸다. 그들의 눈에 생경할 검은 눈의 누군가가 허락도 없이 셔터를 누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베를린시 첼렌도르프(Zehlendorf)에는 오래된 미군부대가 있었다. 그 주변에는 꽤 큰 드라이브 인 맥도널드를 중심으로 미군주거단지가 자리했다. 매년 5월이 되면, ‘미국축제가 그 근방에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마다 작은 공터에서 포니(Pony)를 태워주던 인디언들이 있었다. 유치원 친구의 생일파티 때 코스튬으로 입었던 의상도 (꼬마) 인디언 복장. 비네투(Winnetou)라는 유명한 인디언 캐릭터가 등장했던 칼 마이(Karl May) 원작의 영화들도 어린 시절 진한 기억들로 남아있다. (칼 마이는 인디언이 등장하는 수많은 소설들로 1920년대 독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작가이다. 그의 소설들은 60년대 영화화되기 시작해 소설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익숙했던 인디언의 후예들을 한국의 휴게소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찰나의 마주침이었지만 왠지 모를 어색함에 먼 발치에서 그들을 한참 동안이나 뒤돌아보았다. 그들을 휴게소로 내몬 것은 무엇이었을까. 확실한 건, 그들의 영혼은 아니었을 거란 사실이 알싸하게 다가온다.   

2009/09/02 20:44 2009/09/02 20:44

꾼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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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매한 국어사전에 의하면 이란 어떤 일, 특히 즐기는 방면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하긴 대부분 이란 접미사를 붙이는 것들을 보면 사기꾼, 술꾼, 도박꾼처럼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반대로 나무꾼, 춤 꾼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긴 하다. 나의 경우에 이란 선수와 동의어다.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프로또는 전문가와 동의어란 거다. 내게 있어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보다는 당신은 어떤 꾼입니까라는 질문이 훨씬 도전적이다. 전자는 추상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만, 후자는 구체적이고 현재집중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너는 어떤 꾼이냐고 물었을 때, 조심스레 말문을 트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야기꾼 입니다.”라고. 내게 있어 이야기는 단순히 픽션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요, 스토리의 한국어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넓고도 유연한 개념이다. ‘스토리텔링이란 단어가 판을 치는 형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게 대체 뭐냐고 했을 때 시원스레(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답을 해주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장사치들만이 득실거렸다. 관광지를 조성하기 위해 만드는 설탕발림 정도로 이야기를 추락시킬 마음은 없다. 또 특정기업의 과오를 덮어주고, 이미지를 향상시켜주기 위한 딱갈이노릇도 하고 싶지 않다. 이야기꾼이란 자신이 보는 현실을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이다. 저널리스트요, 작가이자, 비평가 또 창작가인 것이다. 장르를 잡식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재생산해내는 이인 것이다.

나는 글쓰기 작업이 어디서 시작되건 결국은 순수한 나만의 시각으로 파헤쳐진 창작의 연장이라고 자부한다. 촘촘히 연계된 네트워크 안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방식, 무의미를 유의미로 탈바꿈시키는 방식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영감과 감흥은 허공에 떠다니지 않는다. 자극은 외부에서 오기도하지만, 내부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내부에 집중한다. 그 목소리를 듣는다. 정제될 때까지, 나만의 언어, 나만의 이야기가 되는 지점까지. 그 다음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한다. 벅차 오르는 가슴을 안고.

꾼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열정을 요구한다. 동시에 인내와 재능도 겸비해야 한다. ‘은둔 작가로 잘 알려진 일본의 마루야마 겐지는 이렇게 말한다. “창작이란 고()의 자세로 정신의 깊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꾼은 먹고 사는 문제와 전면적으로 부딪혀야 한다. 다른 루트를 통해 안정적으로 삶이 보장되는 순간, 꾼은 사라진다. 가난과 시련,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이는 그 경험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들이 증발하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꾼이 아니다. 삶과 투쟁하되, 그 안에서 고귀함은 잃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시계에 세계의 시계를 맞추어야 한다. 톨스토이가 스타니슬라프스키에게 답했다. “나는 언제나 생각합니다. 작가는 할 말이 있을 때 써야 한다. 머리가 성숙해졌을 때 그것을 종이에 옮겨야 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내가 반드시 3월이나 10월에 잡지를 위해 글을 써야 하지요?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란 한 자를 짊어지려고 하니 어깨가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단순히 직업이 아닌, 소명을 찾아나선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결 가볍다. 입과 손이 근질거리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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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라 에 의해 창작된 꾼의 변 은(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06/21 00:10 2009/06/21 00:10

번뜩이는 찰나

#1 기차나 비행기처럼 장시간 어딘가로 이동을 하는 경우, 옆에 앉는 이웃이 어떠냐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일전에 비만의 정도가 심했던 외국인 둘 사이에 끼어 10시간을 비행했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나를 숨가쁘게 한다. 너무 수다스러운 동행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적당히 미소 짓고, 적당히 자기 책보고, 간간히 졸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만인 것을 관심도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는 이도 피곤하다. 그래도 베일에 싸인 이웃을 만나기 전 설레는 이유는 이따금 생각지 못했던 찰나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주 전, 고속열차를 타고 지방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여성스러운 체구를 지니고 있었던 얼굴이 유난히 하얬던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하고 창가 안 쪽의 자리로 들어갔다. 처음엔 무거운 짐을 무릎에 올려놓더니만, 안되겠던지 이내 죄송하지만, 이 짐 좀 같이 위로 올려주시겠어요? 제 키로는 무리일 것 같아서요하고 부탁을 해왔다. 선뜻 그러겠노라 하고 짐을 올려주었더니, 상냥한 기운을 품은 채, 눈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보는 인상이군하며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펴 들었다. 잠시 후 전화가 오자,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연신 고맙다를 반복했다. 전체적인 말씨도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녀가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무언가 먹는가 보다했더니 고개를 15도쯤 숙인 채, 기도를 하는 게 아닌가. 2-3분여가 지났을까. 그녀는 가톨릭 식으로 기도를 마무리했다. 먹거리를 앞에 두고 정성스레 기도하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 보지 않아도 기도의 형식을 철저히 지키는 자세. 종교인이냐 아니냐를 떠나 누군가의 경건한 순간을 마주한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결국(곁눈질로 훔쳐본) 그녀의 먹거리는 조리되지 않은 야채와 과일뿐이었지만. (내 클리셰이겠지만, 그녀의 채식주의자적 성향까지도 무언가 의식적으로 비쳐졌다. -_-) 번뜩이는 찰나,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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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리 덥지는 않았지만, 뭔가 시원한 것이 땡겼던어제. 메밀국수 집으로 유명하다는 한 식당을 찾았다. 삼삼오오 짝지어 늘어선 줄이 그 맛 집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차례가 다가와 입구 가까이 섰더니 세세한 광경이 들어왔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직접 홀 서빙을 보고 계셨고, 한 쪽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시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돕고 계셨다. 10테이블 남짓한 곳에 20여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말이다. 그 중 시간에 쫓겼던 지, 한 젊은 여성이 할머니께 다가가 재차 재촉했다. “할머니, 지금 저한테 주문을 몇 번째 받아간 건지 알기나 하세요? , 진짜. 빨리 좀 주세요.”하며 혼잣말로 연신 바쁜 사람 가지도 못하게, 에이 짜증나.”를 반복했다. (늙은이 같은 소리지만) 예쁘게 생긴 아가씨 사정이야 알겠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 효율적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짜증까지 낼 건 없지 않았나 싶었다. 반면 옆 테이블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는 이전에 놓여있던 빈 식기들을 직접 주방에 가져다 주며, 조금이나마 할머니의 일손을 도왔다. , 같은 연배의 젊은이들이지만 이렇게나 차이가 날 수 있는지. 우리 테이블의 모리 소바를 가져다 주시며 할머니께서 한 숨을 돌리셨다. “에휴, 오늘 정말 난리도 아니네요. 국수를 큰 솥에 몇 번이나 삶은 지 알아요? 네 번이에요, 네 번. 평소보다 손님들이 많이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 순간 (손님의 입장이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물론 할머니께서는 손님이니 빨리 재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구부정한 허리를 마다하고 이쪽 저쪽 테이블로 종횡무진 하시던 할머니, 그리고 떨리는 왼 손으로 물을 따르던 할아버지의 모습. 그래도 아직까지는 함께이기에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뜩이는 찰나,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    

2009/06/14 09:52 2009/06/14 09:52

툭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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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연히 한 모임에서 초면인 이들과 통성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나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중 외모상으로는 저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여성분이 대뜸 는 스스스스물 일곱이에요.”하고 답하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 했드랬죠. ‘아니, 저 여자만큼은아닐텐데…’하는 생각을 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그 중에서 전 본의 아니게,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나름대로 요즘 유행하는 동안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생물학적 나이테는 따로 노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어쨌든 좀 씁쓸했습니다. 저보다 한참은 돼 보이는 남성분들이 누나라고 부를 때는 시쳇말로 식겁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잘 하는 말이 하나 있죠. ‘나잇값이란 표현인데, 나이에 비례하는 언행에 대한 기대치를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이에 반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요즘 들어 툭하면 눈물이 그렇게 납니다. 특히 서러운 일도 한이 맺힌 일도 없건만, 조금만 감정을 건드려도 어느새 눈물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스스로도 주책스러워서 금새 닦아내고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월 탓이려니하면서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기도 합니다.

남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상처가 나면 잘 아물지 않는다,거나 밤 새면 다음 날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거나 예전에는 없던 군살이 마구 붙기 시작한다거나 말이죠. 내면적으로도 서서히 변화가 생겨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십 대와는 달리,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짙어진다고도 말합니다. 실제 이런 내외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여성은 더욱 강인해 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알파걸로 자라난 엄친딸골드미스가 되는 오늘에는 더더욱 말이죠. 믿기 어려우시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서른 즈음의 여성으로만 포커스를 좁혀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툭하면 눈물이 난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에게 위로인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을 살아온 당신에게 수고했다고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가 절실했던 겁니다. 문득 소프라노 홍혜경씨가 서른을 넘긴 나이에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무대에 섰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예전에 무심코 넘겼던 이야기가 다시 곱씹어보니, 그리 호락호락한 내용이 아니었다 싶네요. 몸소 먼저 난 자로서 덤덤히 길을 가주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지난 해 크게 인기를 끌었던 공지영씨의 책 <나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도 떠오르네요. 무덤덤했던 남성독자들과는 달리, 열광적인 반응을 주었던 여성독자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들어줌의 위로, 말해줌의 위로였습니다.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또는 너는 잘 하고 있어등의 말들은 쉬운 것 같지만, 실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로에 목마른 계절, 인정이 고픈 계절.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진 사람이 있다면, 아니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먼저 진심으로 위로하고 진심으로 인정해 보세요. 당신이 그토록 받고 싶었던 위로를, 그 먼저 내밀었던 행위 하나만으로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툭하면 눈물이 난다고요? 괜찮습니다. 잠시 울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에겐 울 날보다, 그렇지 않을 날이 훨씬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2009/06/08 00:01 2009/06/08 00:01

걷는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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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걷기라는 이름의 까페에 가면 이상하게도 전혀 걸을 분위기가 안 나지만, 뭐 몇몇 그런 곳을 제외하면 서울에서도 걷기 좋은 곳이 꽤 많다. 일산과 분당과 같이 계획형 위성도시에까지 이른다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질 것이다. 아무튼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 동갑내기 친구가 산의 색이 각기 다른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 말했던 것처럼 자연의 변화와 자연의 본성에 눈뜨게 되는 것 같다.

독일에 있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이 푸른 녹음을 도심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뮌헨에서는 영국식 정원이 드넓은 규모를 자랑했고, 베를린에서는 공중에서 보면 물과 숲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명성처럼, 크고 작은 공원들이 즐비했다. 파리에서도 런던에서도 공통적으로 목도했던 산책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일상의 대화들, 자연에의 감동들. 한국에 돌아온 후로도 한참이나 그리워했던 부분이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새, 한국 특히 서울 내에서도 걷기에 즐거운 코스들이 늘어나면서 타향에서 찾곤 했던 여유를 새삼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함께 걷고, 또 걷는 그 맞잡은 손들을 보며, 굳이 멀리서 놀거리를 찾지 않아도 됨을 깨닫는다. 흙의 소리와 나무의 색, 사람냄새가 한 데 엉켜 그야말로 낭만적인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되니 말이다. 한 때 뚜벅이라는 표현이 놀림거리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자처해서 뚜벅이가 되고프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렇게 영원히 걷고 싶다. (서울 도심 산책 코스 추천)

2009/05/31 22:15 2009/05/31 22:15

3 Reasons To Le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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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TV 광고 중


아시아나와의 끝없는 전쟁에서 올드한이미지의 대한항공은 젊음을 택했다. 미국노선운항을 집중적으로 광고하는 TV CF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시리즈는 특히 2,30대를 타겟으로 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대학생활의 시작=유럽배낭여행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던 시절이 불과 십 수년 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식상한 유럽대신 미국으로라는 주문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이 광고에서도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사실은 젊음, 또는 젊다는 것이 떠날 수 있는 자유(권리)로 치환된다는 것이다.

자고로 여행이 육신의 양식으로, 사회적 기본 교양으로 기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몽테뉴는 여행을 일컬어 인생이라는 학교의 선험적 예행연습이라 했고, 오스카 와일드는 여행의 활동성으로 인해 정신이 정제됨을 찬미했다. 또 괴테는 어떠했는가. 그는 자신의 유명한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그곳에서 우울한 자신의 고향 독일로 우리 모두를 구원할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그 말은 괴테의 문학적 영감으로 실현되었다.

#1 나에 대한 인식

MBC 예능프로 <명랑히어로>의 한 코너에서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베스트셀러의 길어 들어선 작가 김동영의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는 요즘 나온 여행서와는 조금 차별된 책이다. (more) MBC 라디오 이소라의 오후의 발견에서 음악작가로서도 발 담고 있는 저자는 서른이 되던 어느 날, 이때까지 모았던 돈을 몽땅 투자해 미국 66번 국도를 따라 국토를 횡단해 보자는 당찬 계획에 돌입하게 된다. (more) 90년대 이후부터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이와 같이 떠났던 사람들이 간간히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변지인들의 눈에는 객기나 허세, 현실감각 제로 등으로 비칠 수 있는 여행들이 떠나는 이들에게는 유의미한 무언가로 작용했다. 그들은 사회고 뭐고, 일단 나를 놓아줄 수 있는,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위해 시간과 돈을 바쳤고, 그 이후의 효능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훌쩍 떠남 자체가 효율/기능이라는 가치척도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단 (아직) 젊다고 해서 무조건 떠날 필요는 없다. 그 어떤 강박관념도 작용치 않고, 그 누구 하나 떠나지 못해 비겁하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환경에 놓이는 상황 자체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형성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구태의연한 사춘기 질문에 허덕인다고 손가락질하는 그이들의 마음에는 과연 확고한 상()이 자리잡고 있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자신과 관계 맺고 있던 모든 중요했던 가치들과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관계 맺기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인식의 출발이고, 여행을 떠나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2 너에 대한 이해

지난 26 KBS 1TV <사미인곡>을 통해 방송되었던 ‘180일간의 트랙터 다이어리에는 스물 여섯의 강기태라는 청년에 대한 조망이 있었다. (more) 2008 9월부터 장장 6개월이란 시간 동안, 후원을 통해 얻은 트랙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며 농촌에 대한 현실을 알리고 싶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more) ‘그는 왜 떠났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떠나고 싶어도 함부로 떠나 수 없었던 시절에 비하면 그의 여행은 자유롭기 짝이 없지만, 요즘의 상황에선 외부적인 요인보다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떠나기가 쉽지 않음을 감안하면, 결론적으로 떠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음은 같지 않을까. 누군가 끊임없이 떠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며 얻는 이야기들을 전해 들으며 가장 많이 취하는 태도는 , 그래. 너는 떠나라라는 냉소일 것이다. 굳이 내가 너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지, 또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하며 끝없는 자기 안으로의 냉소와 부딪히다 보면 떠나는 것뿐 아니라, 그 어떤 행동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강기태의 여정은 고됨 그 자체이다. 노숙과 허드렛일을 반복하면서 그가 과연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그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제3자의 눈에도 그의 떠남이 가치 있는 것은 그가 최소한 새로운 환경에 의해 형성된 상황에 처해보고, 그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순간들을 수집한다는 부분이다. ‘내가 아는 나남이 아는 나를 조금씩 꿰어 맞추는 작업도 때늦은 성장통에 포함되기에, 떠나는 게 낯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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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츠키지 시장, pic by b. kang


#3 떠남, 그 자체에 대한 거부할 수 없음에,

비단 원인-결과론 적으로 떠남에의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역마살’, ‘장돌뱅이 인생이라는 표현들이 부정적으로 이해되었던 것만 보더라도 정착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무한한 불신이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도, 특히 초---대학-취업이라는 일방향적이고 기타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어디가 되었던 떠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정착이라는 오래된 습관도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떠나기 위한 떠남이 아닌, 머무르기 위한 떠남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숨어있음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나는, 또는 떠남을 계획하는 모든 이들의 머리 위에 축복이 있으리라. 지금을 살아가기 보단 살아내려는 그 모든 움직임에 살아 숨쉬는 젊음이라는-레이블이 붙어있다.  

2009/03/31 17:17 2009/03/31 17:17

H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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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마음 단련하라는 의미에서, 그림

영상물을 만들 때나, (때론 논문)을 쓸 때 멈칫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목표가 분명하여 그를 향해 무던히 달려가고 있다고 믿었는데, ‘딸깍하며 눈 앞이 멍해지는 경험, 누구나 해보았으리라. 흔히들 후크가 있다고 말할 때는 원 뜻 그대로 이야기에 갈고리가 있다는 것을 지칭한다. 보는 이를, 읽는 이를 낚아채는 듯한 그 무언가. 바로 그것이 후크다.

며칠 째, 이놈의 후크가 걸리지 않아 좌불안석이다. 만사가 그렇지만, 안달이 날수록 잘 안 풀리는 법이다. 제목은 거창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밋밋한 것 투성이다. 언젠가 들어본 이야기,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 그런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보니 감동도 감흥도 다 옛 일처럼 아련하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대부분 집 뒷산을 산책하거나 샤워기 아래에 가만히 서 있을 때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후크에 발동이 걸리곤 한다. 보통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쓰는 방법인데, 후드 티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어도 후크 잡이에 꽤 유용하다. 언뜻 봐도 미신스런(!) 냄새가 나는 이 방법은 참으로 이상하게도 먹히곤 한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이 방법이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가 각자만의 방식으로(남에게는 비록 요상하게 보일지라도) 후크를 걸면 된다. 아마도 내게 이런 류의 행위가 작동하는 것은 가장 마음이 편안한 시공간에 자신을 놓아주기 때문인 것 같다. 너무 복잡한 환경계에서 활동하다 보니 자신을 이완시킨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신만의 시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특히나 후크같이 엑기스만을 징집해 놓은 듯한 사고의 결정체와 마주하기 위해선 더더욱 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진도가 생각만큼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쉬이 좌절치 말자. 중간고사 바로 전날, 마지막 날에 뭘 하며 놀지,하는 식의 생각이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한 가지 분명한 건, ...는 당신의 지리멸렬한 싸움이 끝난다는 것이다.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아니지만,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겠지만. 에라이. 어차피 그런 싸움의 연속이라면 이왕이면 느긋이 즐겨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후크. 그 한 방으로 인생역전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밤 잠 설치는 당신의 프로젝트()에 일말의 도움은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기다려라, (후크가) 걸리리니.

2008/10/16 09:43 2008/10/16 09:43

짤막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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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멋진 하루

다분히 있을 법한 인물이었다. 희수(전도연 분)도 병운(하정우 분). 특히 병운이란 인물에 대한 묘사는 주변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초긍정의 캐릭터여서 한층 공감이 갔다. 여기저기 얻어터져도 (전혀 열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면서 극도로 체화된 화해의 기술또는 이해의 기술을 몸소 실천하는 이, 병운. 혹자의 눈에는, 아니 그런 그를 한때 (어쩌면) 열렬히도 사랑했던 희수의 눈에는 그런 그가 속도 (배알도) 없어 보이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지만, 병운은 그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문법을 터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 정혜>를 통해 이윤기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 나른한 호흡에 동승할 수 없어 괴로웠었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멋진 하루>로 이어지는 그의 연출법에 와아하고 탄성을 내지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밀함에 대한 밀도에는 진심 어린 경의를 보낸다. 영화를 보며 조금은 쓸데없는 샷들이 많이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로케이션 헌팅은 참 열심히 했단 생각도 들었고, 전도연의 스모키아이가 꽤나 어울린다는 이런 저런 잡생각을 했다. 간간히 나오는 노래도 괜찮았고, 특히 타이틀 나오기 전까지의 부분 편집이 딱이었고. 그래도 좀 더 거리두기를 했더라면 여느 일본소설들같이 무미건조하면서도 무채색의 향(이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을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식 같은 영화를 그렇게 뗐다 붙였다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걸 감안하면, . 한 친구의 말마따나 남에게 강추하긴 어렵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가을영화가 되겠단 생각은, 한다. 보세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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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행의 종말

수년 전에 <보그 탤런트 콘테스트>(일종의 글쟁이 뽑기였는데,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난 것 같아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든다. 편집장님, 어떻게 좀 기사회생 시켜주시든가,)의 지원 조건은 자기소개서’, ‘문화비평’,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영향을 끼친 인물 인터뷰등 세 가지의 글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일전에 소개했던 소설가 김영하 인터뷰가 제출했던 세 글 중에 가장 높이 평가를 받아 당선이 되었지만, ‘여행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했던 문화비평도 마음 속 한 구석에 아쉬움 아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줄여 말하자면,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여행은 이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골자로 하고 있는 에세이였는데, 아마도 조금 더 섹시한 제안을 하지 못했던 게 패배(?)의 이유였던 듯. 갑작스레 이제 와서 다시 여행의 종말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 갑자기 부친께서 내년 가족 모두 하던 일을 올 스톱하고 일년 동안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제안을 하시는 바람에 여행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하아. 누구나 꿈꾸던 바가 아닌가. 세계여행이라. 남들 펀드에 혈안이 될 때, 여행이나 가자는, 참으로도 한량 같기도, 로맨티스트 같기도, 부르주아 같기도한 아이디어에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 떠나요로 응답하지 못했지만, 심정적으로는 모두 다 재밌겠는 걸을 외쳤으리라. 모친은 다니는 회사 걱정을(휴직을 일년이나 하고 난 다음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남동생은 다닐 회사 걱정을(자신이 천재라며 빨리 사회에 자신의 재능을 헌신하고 싶다는 지극히 요상한), 그리고 나는, 뭐 일년쯤 휴학이야 백 번이라도 해 줄 수 있지만, 그다지 오래 다닐만한 학교는 아니라는 생각에(교수님들이 아시면 안 되는 지극히 비밀스런) 머뭇거리고 있다. 아마도 일 년은 너무 심했고, 방학 동안만이던 반 년만이던 (가족 모두 건강할 때) 떠나는 마지막 여행(?)’을 하며 어쩌면 십 년 후에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이동하고, 직접 체험하는 식의 여행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예감이 든다. (.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세기의 마지막 아날로그 세계여행도 역...인 이벤트가 될는지도.) 

 

#3 부귀영화

귀여운 면이 많은 과 친구와 서울을 오가며 기차 안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그 친구와 나의 관심사가 꽤나 비슷하단 사실에 흠칫 놀랐었다. 특별히 괴기스런 부분이 있지도,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적당한 보헤미안 마인드. 새로운 거 찾아 보기 좋아하고, 어디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의 우리 둘은 문득 부귀영화란 단어를 남용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문맥 상 보면 이렇다.

: 어제 공연은 어땠어?

: , 달랑달랑하게 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러나.’

: 어머머. 나도 알아. 딱 그 느낌. 진짜 이게 왠 생난리인가 싶고.

그다지 적합한 단어선택은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의미상으로는 그보다 나은 표현이 없겠다 싶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에휴. 기다렸던 공연이나 소개팅이나 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다. 물론 전자는 결국 보는 게 나았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결국 안 보는 게 나았다는 의미지만 말이다.

 

#4 프로젝트로의 탈출

두 가지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 하나는 기획이 더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자로서 참여하는 프로젝트이다. 지난 주에 한 여장부 교수님앞으로 뭐할 거냐는 다분히 답 안 나오는 질문을 갑작스레 하시길래, “다방면에 능통한 프로듀서가 되려구요.”라는 한 편으로 보면 마음에 있고, 다른 한 편으로 보면 무슨 헛소린가 싶은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 요즘엔 장기적인 계획은 다 필요 없고, 단기적인 실천만이 살 길이라는 식으로 살고 있어 그런지, 일단 눈 앞에 닥친 놈들부터 해결하다 보면 뭔가 보이겠지 싶다. <M>의 안개는 도처에 깔려있다. 그걸 더 옅게도 짙게도 할 수 있는 재미난 세계로의 입문.  

 

#5 서른의 연애

서른을 다른 단어로 대치할 수 있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단호하게 무기력을 내세우겠다. 일찌감치 정신 차리고 어엿한 사회의 역군으로서 기능하는 나의 친애하는 동년배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서른은 일종의 오춘기에 접어드는 요상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십 대 초반에 전 생애를 걸쳐 할 고민을 다 해버려서 인지 되려 요즘은 단순하고 명료한데, 주변인들은 영 그렇지 못한가 보다. 쿨이고 시니컬이고 대부분의 한국작가들이 싫어하면서도 차용할 수 밖에 없는 이러한 멘털리티는 도처에 깔려있기에, 그것도 깊숙이 드리워져 있기에 함부로 제거하거나 터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고체계가(어쩌면 생활태도가) 연애라는 필드에도 여지없이 발휘되다 보니, 외롭기는 한데 누군가를 옆에 두기는 좀 귀찮고,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 식의 냉랭한 기운이 지배적이다. 뭔가 열정 따윈 잊은 게냐고 따지고도 싶지만, 그럴 기력으로 다른 거나 하는 게 낫겠다 싶은 또 다른 무기력이 작동한다. 참나. 여러모로 피곤한 나이다.

 

#6 문화는 네게 있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도 약발이 다 된듯한 마당에 문화가 중요하단 타령을 하는 게 웃겨 보이기도 하지만, 명색이 문화란 글자를 앞에 달고 있는 학교에 몸을 담고 있자니 (필연적으로) 문화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AT(아트테크놀로지) 심포지엄에도 다녀왔지만 서도 학제 간 연구, 그 가운데서도 문화 또는 예술과 기술 또는 과학과의 접목은 (비단 정부주도의 미래사업이어서가 아니라) 실로 중요한 화두로 점쳐지고 있다. 물론 CT(컬쳐테크놀로지)가 기술 베이스로 문화를 받아들이고, AT가 예술을 베이스로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개념적 또는 이론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체념적 비판을 해보자면 이렇다. 문화든 예술이든 오늘의 삶에 있어, 나아가 미래의 인류에게 있어 이가 중요하고 그와 기술(과학)이 상관관계를 맺는 과정을 살펴보고, 이차적인 합성효과(시너지)를 기대한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를 교육하고 독려하는 과정에 있어서 비단 새로운 트렌드 섭렵하기새로운 창조물 보여주기식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교육이란, 특히 이와 같은 실효적/미래적 학문에 대한 교육이란 정부 산하 사업이란 파이의 부스러기 많이 줍기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전적인 개방과 자유롭다 못해 무질서해 보이기까지 한 전방위적 교류(소통)을 통해서만 미래적 코드를 조금씩이나 이해하고, 그를 넘어선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문화는 네게 있어 무엇인가. 너무나 원론적이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AT CT던 순수엔지니어, 순수아티스트의 영역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그 둘간의 영역을 이어주는 멀티가교로서 기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던가. Early Adapter만은 부족하다. 다져진 식견으로 맥을 짚어 낼 줄 아는 In depth Visionary가 절실하다.


2008/10/11 13:17 2008/10/11 13:17

Anger in You

수년 전, 틱낫한 스님의 라는 책이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눈을 돌리면 화를 낼 만한 것 투성이인 세상에서 화를 굳이 참으려고만 하지 말고, 잘 어르고 달래라는 내용이 주 골자를 이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를 일종의 우는 아이라고 비유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내버려두고 있는 형상이다. 짧게 말하자면, 화를 못 내서 안달 난 이들이 즐비해 있다는 얘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부터 하루에 한 번씩은 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불덩이가 불쑥불쑥하고 감정의 에스컬레이터 행을 반복함을 느낀다. 조금 지나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게 아닌가 하고 금새 후회막급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왜 화를 그리도 자주 내는 것일까. 더 편리해졌지만 한편으론 복잡하기도 한, 더 풍성해졌지만 동시에 빈곤해지기도 한 오늘에 느끼는 일분일초의 괴리가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일까. 그러한 시스템에 길들여진 우리는 더 이상 참고, 양보하고,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 진 것일까. 그 답은 시간이 많으신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 또는 정신분석학자들에게 일임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일단 내가 이해하는 수준에서의 가 어떠한 지점에서 발생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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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마음이 한강보다 더 길쭉하게 뻗어있는 이라도 서울시내에서 운전을 하면 서너 평 남짓한 남산 쪽방 만해짐을 느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경남지역이 더 심각하다고 본다.) 대체 양보라고는 모르는 운전자들이 모여있는 곳, 바로 서울이다. 깜빡이를 켜는 순간 옆 차로 뒤편에서 오던 차는 이를 마치 엑셀을 힘껏 밟아라라는 이해를 하는 모양이다. 끼워주는 경우? 드물다. 이따금 속이 상하는 건, 큰 차를 탄 운전자일수록 좋은 차를 탄 운전자일수록 매너가 더 좋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약한 상황, 불편한 상황에 처해있는 이에게 무한한 배려를 뽐내는 사람은 유명 차 광고의 모델에만 적용된 이야긴가 보다. 결국 초보자건 베테랑이건, 미니카건 대형차던 모두모두 전투태세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혹여나 사고라도 난다면 일단 드러눕거나’, ‘울그락불그락하거나 택일해야 한다. 이래서 결국은 화가 안 난 상태의 운전자는 아무도 없게 된다. 참 멋진 세계다.

   

백화점: 오늘도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점원과 티격태격하는 모녀를 발견했다. 지나가는 이가 봐도 너무 한다 할 정도로 옷을 무작위로 갈아입고는 이 코너 저 코너를 전전하던 잠정적 소비자가 거의 영업에 방해될 정도가 되자 이를 점원이 조용히 타일렀고, 일순간 모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뭐라고? 너 어디 한 번 다시 말해봐.”하며 핏대를 올리기 시작했다. 주변인들은 슬슬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고, 멀찌감치서 작은 싸움을 구경했다.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이러한 광경들은 꽤나 사사로운 이유가 시발점이 되는 경우다. 성급하게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존감이 결여되어있는 사람일수록 마른 풀에 불 붙인 듯 파르르륵하고 타오르게 된다. 그리고 대게는 니가 뭔데 감히 나한테하는 식으로 귀결된다. 백화점처럼 상품을 사는 동시에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소비자의 심리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요구수준이 도를 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심히 서비스 정신이 결여된 점원도 무수히 많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에 발생하는 분쟁은 자신이 충분히 대가를 지불한 것에 대해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되었을 때 발생한다. ,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 받고만 하는 자,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자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화를 발산하게 된다. 이럴 때 해 줄 말-욕심쟁이, 우후훗

 

학교: 부부싸움을 하고 와서 조회시간에 엄한 애를 붙잡고 화를 내는 선생님은 비단 중고등학교 시절에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보다. 대학사회에 와서도 나이여하의 관계없이 남에게 화를 뿜어대는이들이 넘쳐난다. 대체 뭐가 그리도 못마땅한 건지 고개가 저절로 갸우뚱한다. 지위가 올라가면서 인격도 자라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그 관계는 늘상 반비례하는 것 같아 그럴거면 차라리 덕 있는 무학위자로 남고 싶다. 상호 간에 학문적 근거에 의한 발전적인 크리틱이 오고 간다면 이야말로 아테네 학당을 능가하는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 텐데. 얄궂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학생과 학생 간, 선생과 학생 간, 선생과 선생 간에 위계질서가 성립되기 이전에 교감작용이 더 활발하게 일어난다면 굳이 화를 내는 사람도 화를 받고 참아내야만 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까. 이런 건 맨날 이뤄질 수 없는 꿈으로만 남는 법이여서 참 씁쓸하다.   

 

화를 아예 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 빈도수를 줄이는 것은 마음먹기 달린 것일게다.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간 사랑이 씩씩거리던 죽일 놈에서 기억마저 어렴풋한 , 누구?’로 변해가는 과정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지 않았는가. 어른들 하시는 말마따나 용서 못할 일, 이해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법이다. 화를 참으면 병이 되지만, 화를 잊으면 덕이 된다. 다음 번엔 이렇게 쓰고 싶다. Virtue in You라고.  

2008/09/20 21:58 2008/09/20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