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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6/19  정치적 암컷
  2. 2009/06/08  툭하면
  3. 2009/05/15  여자라서 고민돼요 (2)
  4. 2008/11/12  KBS 8 뉴스타임, 첫 더블 여성 앵커 도입
  5. 2008/06/29  중년 즈음에,

정치적 암컷

조금 격한 표현이지만, 정치적 암컷은 (원래는) 섹시하다. 욕망과 야망은 수컷의 전유물인줄로만 알았겠지만, 실상 역사적 야화를 잘 살펴보면 칼을 휘두른 건 남자지만 그 칼자루를 쥐어준 건 여자였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미모로 때로는 두뇌로 공략하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그를 가르는 야성은 동색이었으리라.

아직도 안보리에는 우중충한 남성 수트들만이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지만, 안방극장은 무서운 언니들에게 저당 잡힌 지 오래다. 그래. 재미없는 일들은 남자들에게 맡겨! 우리는 진짜를 휘어잡을 테니깐! (꺄르르르) , 순간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한참 동안 숨겨왔던 암컷의 속내를 드러낼 때가 왔나 보다. 정치여, 기다려라.

SBS 시티홀

대표 미중년으로 떠오른 차승원과 한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김선아가 만나 티격태격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한 평범한 하급공무원이 소도시의 시장이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온갖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정치판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관철해나가는 우직한 여성 리더의 모습은 그다지 미약해 보이지 않는다. 늘 독립적인 성향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작가의 기우 때문인지) 막강한 남성조력자를 옆에 두기 마련이라, 때로 여주인공의 독립심이 빛을 발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에서는 좌충우돌하던 여성 캐릭터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강해져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남성조력자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혹자는 강한 것은 옳은 것을 이긴다고 하였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는 법인가 보다. (보너스로 차승원의 매력을 훑어보는 만화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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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선덕여왕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는 슬로건을 걸고 50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인 MBC의 야심작. 아직까지는 아역에 비중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탄탄한 긴장관계를 이끌어가고 있음이 눈에 띤다. 최근 한 신문 칼럼에서는 선덕여왕과 미실의 리더십을 비교분석하기도 할 만큼(기사보기) 사극 속에 등장하는 여성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아직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선덕여왕은 곧 인재를 중용하는 용인술을 발휘하는 등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남다른 친화력을 겸비한 리더로 부상할 예정이다. 특히 미실의 경우는 유명한 팜므파탈로 악인화되었지만, 그만의 정치력은 선과 악의 잣대를 벗어나 주목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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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C ≪Parks and Recreation

유명 쇼 프로그램인 ≪Saturday Night Live≫의 대표명사였던 Amy Poehler를 앞세워 ≪The Office≫의 제작진이 내놓은 야심작이다. 언뜻 보면 ≪The Office≫와 유사한 카메라 워킹이나 드라이한 유머로 단순히 스핀-오프 판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지만, 갈수록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잡아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부부처의 행정과 관료주의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매 상황과 대사가 함축하고 있는 바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감상의 재미가 두 배로 늘 것이다. 동명의 정부부처의 Leslie Knope라는 혈기왕성한 여공무원을 둘러싼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Leslie는 힐러리나 페일린과 같은 여장부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물론 모든 상황은 시청자의 웃음으로 회색 칠 되지만 말이다.

Showtime ≪Nurse Jackie  

≪Nurse Jackie≫≪House M.D≫≪Six feet under≫ 또는 ≪Californication≫와 같은 블랙유머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해 줄만한 작품이다. 간호사 수 십 년의 베테랑 간호사가 겪는 병원에서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이지만, 무미건조한 미국의 일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다큐멘터리기도 하다. 면도칼을 목에 댈 때마다 삶과 죽음이 가까이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던 누군가의 말처럼 그 사이의 간극을 급박하게 느끼는 곳이 바로 병원일 것이다. 미국인들이 지나치게 법정물과 병원드라마를 편애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인간의 삶이 천국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적나라한 시공간도 없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재키가 얼마나 더 ‘X같은순간들과 마주하게 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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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9 21:11 2009/06/19 21:11

툭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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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연히 한 모임에서 초면인 이들과 통성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나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중 외모상으로는 저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여성분이 대뜸 는 스스스스물 일곱이에요.”하고 답하는 바람에 적잖이 당황 했드랬죠. ‘아니, 저 여자만큼은아닐텐데…’하는 생각을 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그 중에서 전 본의 아니게,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나름대로 요즘 유행하는 동안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생물학적 나이테는 따로 노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어쨌든 좀 씁쓸했습니다. 저보다 한참은 돼 보이는 남성분들이 누나라고 부를 때는 시쳇말로 식겁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잘 하는 말이 하나 있죠. ‘나잇값이란 표현인데, 나이에 비례하는 언행에 대한 기대치를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이에 반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요즘 들어 툭하면 눈물이 그렇게 납니다. 특히 서러운 일도 한이 맺힌 일도 없건만, 조금만 감정을 건드려도 어느새 눈물 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스스로도 주책스러워서 금새 닦아내고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월 탓이려니하면서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기도 합니다.

남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상처가 나면 잘 아물지 않는다,거나 밤 새면 다음 날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거나 예전에는 없던 군살이 마구 붙기 시작한다거나 말이죠. 내면적으로도 서서히 변화가 생겨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이십 대와는 달리, 모험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짙어진다고도 말합니다. 실제 이런 내외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여성은 더욱 강인해 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알파걸로 자라난 엄친딸골드미스가 되는 오늘에는 더더욱 말이죠. 믿기 어려우시죠? 하지만 사실입니다.

서른 즈음의 여성으로만 포커스를 좁혀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툭하면 눈물이 난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에게 위로인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을 살아온 당신에게 수고했다고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가 절실했던 겁니다. 문득 소프라노 홍혜경씨가 서른을 넘긴 나이에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무대에 섰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예전에 무심코 넘겼던 이야기가 다시 곱씹어보니, 그리 호락호락한 내용이 아니었다 싶네요. 몸소 먼저 난 자로서 덤덤히 길을 가주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지난 해 크게 인기를 끌었던 공지영씨의 책 <나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도 떠오르네요. 무덤덤했던 남성독자들과는 달리, 열광적인 반응을 주었던 여성독자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들어줌의 위로, 말해줌의 위로였습니다. ‘나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또는 너는 잘 하고 있어등의 말들은 쉬운 것 같지만, 실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로에 목마른 계절, 인정이 고픈 계절.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여진 사람이 있다면, 아니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먼저 진심으로 위로하고 진심으로 인정해 보세요. 당신이 그토록 받고 싶었던 위로를, 그 먼저 내밀었던 행위 하나만으로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툭하면 눈물이 난다고요? 괜찮습니다. 잠시 울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에겐 울 날보다, 그렇지 않을 날이 훨씬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2009/06/08 00:01 2009/06/08 00:01

여자라서 고민돼요

프롤로그

어떤 젠더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입을 잘 열지 않는 성격이라(때론 소모적인 논쟁이 난무한다고 생각하기에), ‘여자라서’, ‘여성이어서란 조건을 다는 것도 좀 구차하게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여자라서 고민된다는 식의 논의를 펴는 것은, 사회구조 상 그리고 젠더 특유의 성질 상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고개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스물의 여자가 다르고 서른의 여자가 다르듯, 여자가 가지게 되는(또는 가질 수 밖에 없는) 고민의 성격도 바뀌게 되어있다. 누군가에겐 굳이 여자여서가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서의문제일 수도 있겠다. 이러나 저러나 고민이 되는 건 이성이 달린 슬픈 동물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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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길을 막는 건 바로 너야

최초라는 수식어를 다는 것은 원조라는 수식어를 다는 것만큼이나 부담이 되는 일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지만, 작은 예술학교의 최초의 여성총학생회장 당선’, 그리고 최초의 여성러닝메이트 당선이란 꼬리표는 들리는 것만큼이나 거룩하고 영예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학생회 일이 한창이던 때, 여지없이 봄날의 축제는 시작되었고 그 기간 동안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자 했던 한 과목의 교수님과 맞닥뜨리던 순간,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어머, 여학생들이 이끄는 총학이라니, 얼마나 고무적인지 모르겠네요.” 생글거리는 말문을 트고 난 이후에도 그 고무적인 성과에 대해서 한참을 떠드시더니, 결국은 고무적인 성과를 낸 여성회장단에게 내가 쓸 자리니 물러나라고 물러서지 않는 여성적 전투성을 몸소 체험케 해 주셨다. 물론 두 가지 일은 성격이 다르기에 하나의 사안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최소한 고무적인 성과에 대한 포문은 아예 열지 않았던 게, 같은 여성vs여성의 대화에서 훨씬 덜 비겁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굳이 매사에 그 공식이 들어맞지 않았으면 하지만, 정치적인 여자의 적은 정치적인 여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 때 미처 못한 말: 난 당신을 위해 고무적이고 싶진 않군요.)   

괜찮아, 이것 봐, 얼마나 근사하니

아이러니는 여자의 적뿐 아니라 여자의 친구도, 그것도 최고의 친구도 여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작지만 실속 있는 전시회를 앞두고 고민하고 있는 작가 친구를 만났다. 공모 데드라인에 맞추어 전시컨셉을 잡기는 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설치해야 하는 날짜는 다가오고, 기대하는 주변인은 많고, 시시한 작품을 내고 싶지는 않고,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스물 넷의 친구였다. 조언을 듣고 싶다는 말에 작업실을 찾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친구는 그래, 언니가 해주는 말이 필요했어라며 구겨진 인상을 조금 풀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예술의 문제에 있어서 타인이 구체적인 답변을 해주기는 어렵다. 나의 경우도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언니또는 같은 여자친구로서의 심정적 지원은 때론 남자친구의 그것보다도 부모의 그것보다도 더 가깝고 에너제틱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여자는 여자의 자신감, 그리고 자존심의 영역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 줄 수도 누구보다 더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결국은 양날의 칼을 모든 여자들이 서로를 향해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글쎄. 그건 비단 젠더의 생리이지, 좋고 싫고 또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여자가 듣고 싶어하는 건 (물론 남자의 경우에도 상이하다고 믿지는 않는다), 결국 괜찮아’, ‘좋다’, ‘이해한다’, ‘그래’. 때때론 참 근사하다란 말일 게다. 어렵지 않다고? 곰곰이 돌아보라. 스스로 얼마나 자주 이런 말을 했는가를 말이다.   

결국은 ‘우리의’ 문제더라

일전에 EBS의 간부직에 계시던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10년 후 이력서를 한 번 써보라고 하셨다. 상상의 나래를 편 채, (당시 로스쿨 문제로 한창 시끄러웠다) 5년 후 로스쿨 졸업, 이후 방송통신법 관련 전문변호사 따위의 내용을 가득 채웠었는데, 돌아온 건 한 마디 질타. “어떻게 개인적인 삶은 그렇게 쏙 빠졌어?” 당시에는 누가 감히 이력서에 결혼, 출산 등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를 쓰겠나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누가 보기에도 부러워할 만한 이력서를 써 가지고 오라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삶에 대한 고찰, 계획에 대한 재고에 대해 찬찬히 훑어보라고 주신 시간이었던 듯. 그걸 서른의 문턱에 서니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요지경 같은 요즘 세상에선 시원한 정답이 없다. 결혼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일을 해도 문제, 놀아도 문제, 살아도 문제, 죽어도 문제. 모순 투성이라, 굳이 하나를 쭉 밀고 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최근엔 자연스레 결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게 굳이 나만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더라는 게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그래도 결국 인간은 혼자가 아니더냐, 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은 본질적으로 나와 너의 문제이지 오롯이 나만의 문제로 끝나지 못한다. 그런 속성을 생각할 때, 나만을 위해 공부하고, 나만을 위해 결혼하고 나만을 위해 자아성취를 하지는 않는 다는 결론이 나온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에서부터 코스모스라는 큰 사회에 이르기까지 범위의 문제이지, 결국은 그 안의 나이기 때문에 내일이 있고, 그 다음이 있는 거 아닐까. 그렇다면 나, 여성의 문제도 너, 우리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다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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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차마

위의 상황들은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란 거다. 그리고 아마 여기에서 이란 영영 없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자라서 고민되는 문제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원망도 해보고,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가 아닌 무엇이 되던 간에 문제들은 산재해 있다. 과거 사회에 비하면 그 문제들이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한다. 문제의 양이 아닌 성질의 문제다. 과거의 문제와 오늘의 문제는 그 성격이 바뀐 것이다. 그렇기에 고민의 시기는 달라졌을 지 언정, 총체적인 스트레스는 유사하다. 그러나 젠더가 이미 숙명이라고 한다면, 그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대한 조화롭게 해결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힘든가? 포기하고 싶은가? 우리를 좌절시킬 만한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하다. 이 와중에도 힘이 되는 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무수한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힘이 되는 건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란 거다. , 해낼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여자여, 일어나라. 그리고 함께 걸어가라. 그대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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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5 12:51 2009/05/15 12:51

KBS 8 뉴스타임, 첫 더블 여성 앵커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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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조바심과는 다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며 , 여긴 이런데 우린 왜란 질문은 내외부적으로 질타를 받기 일쑤면서, 자체적인 발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17일부터 개편되는 ‘KBS 8 뉴스타임의 첫 더블 여성 앵커 제는 그 동안 다른 이들의 사정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며 부러워해왔던 장면이 현실화되는 진화의 일면으로 보여진다. 실제 속을 들여다보면 방송국만큼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집단도 없다. 대중보다 한 보 이상 빨리 앞서 나가야 하는 언론의 성격을 감안하자면 이러한 조직의 성격이 쉬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게 (안타까운) 사실이다.

총 다섯 번에 걸친 앵커 기용 테스트를 통해 최종 낙점된 정세진 아나운서와 이윤희 기자가 새 ’KBS 8 뉴스타임의 얼굴이다. 김주하 ()아나운서(이제는 기자)‘MBC 뉴스데스크의 주말 앵커로 자리 잡았을 때 이상으로 의미 있는 기용이니만큼 단순히 이벤트 성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정이야 어쨌든 김주하 앵커가 1년이라도 쭉 끌고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1인으로서 여성 앵커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누구보다도 애정(과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비단 여성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능력 있는 여성이기 때문에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단 말을 듣기 바란다.) 아무튼 축하! (관련기사 링크)   

2008/11/12 17:36 2008/11/12 17:36

중년 즈음에,

사족1.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해 중년이란 단어 자체가 아직 섹시한 지는 모르겠다. 물론 성숙한, 보다는 숙성된,이 더 잘 어울리는 나이가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만 말이다. (이쯤에서 조지 클루니나 브래드 핏 모두 중년에 더 멋져졌다는 얘기는 들먹거릴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외쿡의 경우다. 모두 솔직해지자.)

 

사족2. ‘중년의 사전적 의미는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다른 말로 하자면 청년과 노년의 중간지점 정도가 되겠다. 그러나 이것 또한 어디까지나 과거의 기준에 의한 정의다.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100세까지 바라보는 것이 낯뜨겁게 되지 않은 이상, 마흔 안팎을 과연 중년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 지 모르겠다.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 사람이 동성보다는 이성에게 더욱 관대하다는 심리학적 근거를 뒤로하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는 단연 중년의 남성상이 연배의 여성상에 비해 찬란한 경우가 많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우리 머리 속에 각인된 이미지 또한 중년의 여성 하면 아줌마가 퍼뜩 하고 떠오르는 반면, 남성의 경우 아저씨신사가 동시에 떠오른다. 불공평한 처사지만, . 사실이다.

 

갈수록 결혼을 거부하는 골드미스가 늘어나고, 혼인인구 대비 출산율이 저하되면서 다시 한 번 여성과 가정에 대한 사회학적인 진단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비단 직업과 결혼이 인류 최대의 딜레마는 아니지만, 적어도 동양문화권 내 존재하는 여성들에게는 벗어 던질 수 없는 짐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느 때보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중년의 언니들이 써나가는 신()여성사가 머나먼 토스카나 지방의 사프란 리조또 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진다. 꿈나라 탐험은 두 시간 남짓, 극장에 불이 켜지면 띵동!’. 현실로의 회귀다, 안타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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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40


전작 <여왕의 교실> <톱 캐스터>등을 통해 줄곧 강인한 직업여성 이미지를 구축해왔던 아마미 유키가 서른 아홉살의 정신과 의사 오가타 사토코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어라운드 40>. , 제목에서도 너무 잔인하게드러나듯이 마흔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전문직 여성이 겪는 사회적개인적 갈등을 그린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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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

핀란드 헬싱키의 한 골목에 일식당을 차린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 분)는 장사가 되지 않아 한 달 넘게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던 와중에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 분)와 마사코(모타이 마사코 분)가 우연히 식당에 모여들면서 여러 일들이 생긴다. 아름다운 핀란드의 자연과 소박하지만 임팩트있는 일본의 식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난 영화. 소프트한 버디무비로서도 손색이 없다.  









중대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두 작품을 보면서 느낀 건 그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는 풀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개중에는 풀리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일과 결혼, 거기다 출산의 문제까지. 이 범주에 국한시키고 보면 서른에도 막막했던 문제들이 마흔이 되었다고 해서 초강력 파스마냥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그들은 끙끙대고, 울거나 웃거나, 불행해하기도 행복해 하기도 한다. <어라운드 40>는 이 문제를 조금 더 현실에 가깝게 두고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에게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결혼생활을 해 나가는 친구들이 있고,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돈이 많거나 없거나, 모든 처한 상황과는 관계없이 각자의 문제로 괴로워한다. 반면 <카모메 식당>은 조금 더 진화한(?)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일이냐 가정이냐의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한 여성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선택한 이국에서의 삶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선택을 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지에 주목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는 그다지 우울하지 않은 모습으로, 아니 더 정직히 말해 유쾌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우정은 남자의 전유물만은 아닌 듯

 

<어라운드 40> <카모메 식당>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 한 가지는 세 명의 여성(친구)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지고 서로를 다독이면서도 때로는 시기하고 반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무적인 건 이 여성동맹이 꽤나 탄탄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페미니즘적인 수사를 달지 않더라도 그들은 동일한 정체성과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여성성을 더 큰 조화를 위한 분모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남성들의 뜨겁고 끈적거리는 우정과는 또 다른 형태의 우정이 가능함을 어필한다. (영화 <카모메 식당>은 이를 넘어서서 여성공동체를 통해 일종의 유토피아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결국 중년?

 

이러나 저러나 결국은 중년의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쌩쌩하기만 했던 몸뚱아리가 점차 노화되어 감을 진저리나게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 ‘젊은 것들이 이유 없이 얄밉게 느껴지는,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유년을 그리워하게 되는 나이. 일에서나 가정에서나 안정적인 위치에 놓여있지만 저마다의 구멍을 안고 사는 나이. 그래서 멋지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나이. 그래서 위기가 될 수도 있는 나이. 이충걸이 경고했듯 젊음을 자만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은 중년을 메인스트림의 가치로 어설프게 포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중년일수도 있고, 아직 아닐 수도 있고, 애저녁에 지났을 수도 있다. 그와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온, 오지 않은, 혹은 지나버린 시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한번쯤 어떨까하고 턱을 괴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나 당신이 여성이라면 중년이 비단 풍요로 넘치는 마법의 옷장이 아닐 수도 있음을 가늠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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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위의 드라마와 영화 모두 출연하는 연기자가 바로 '카타기리 하이리'다. 워낙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배우라 <카모메 식당>에서 처음 접하고는 리서치를 무진장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후) 그 이후 <어라운드 40>에서 여주인공의 연하남의 누나로 등장해, 범상치 않은 연기를 펼치고 있다. 참, 이유없이 호감가는 스타일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중독성 있는 캐릭터다. 주목해 보시길.






2008/06/29 15:59 2008/06/29 1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