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체류기 (7) 밀라노의 자존심을 맛보다

밀라네제(Milanese, 밀라노사람을 뜻함)의 자존심이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패션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축구와 디자인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밀라노는 AC밀란과 인터밀란이라는 쟁쟁한 축구팀의 본거지일 뿐 아니라, 패션디자인을 주축으로 이탈리아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선도도시이기 때문이다.

San S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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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름은 죠세뻬 메아짜 스타디움(Stadio Giuseppe Meazza, 죠세뻬 메아짜는 3-40년대 AC밀란과 인터밀란 두 팀 모두에서 활약하며 2번이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축구선수의 이름)이지만, 산 시로(또는 간단히 시로)로 더 잘 알려진 AC밀란과 인터밀란의 경기장을 찾았다. 1926년 완공된 이후 여러 차례의 레노베이션을 거친 이 경기장은 현재 8만 여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이는 전세계 Top 10에 드는 규모를 자랑한다. 산 시로 경기장은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피콜로미니에 위치하고 있었다. 방문했던 8월초 당시는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하기 2-3주 전으로 한적했지만, 박물관과 경기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심심찮게 보였다. 40분 남짓한 경기장 투어는 경기장과 관련된 역사와 두 홈 팀에 관련된 에피소드, 라커룸, 프레스룸 등을 직접 구경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박물관 내에는 AC밀란과 인터밀란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를 구비해서 축구팬들을 유혹하고 있었고, 옆에 자리한 샵에서는 오리지널 기념품을 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밀란팬도 축구팬도 아니었지만, 문외한도 흥미를 가질 수 있게 꾸며진 산 시로의 방문은 충분히 기억할만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Triennale 

Sempione공원 남쪽에 위치한 Palazzo dell’Arte는 밀라노의 디자인 박물관 트리에날레(Triennale)가 위치하고 있다. 본디 트리에날레는 발음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 삼 년마다 열리는 국제박람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비엔날레가 2년마다 열리는 국제박람회인 것처럼) 1923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트리에날레가 1933년 밀라노의 Palazzo dell’Arte에서 개최된 이후, 강렬한 여파로 그 다음부터 본래의 건물이름을 버리고 트리에날레라는 애칭 아닌 애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방문했을 당시는 외관공사로 자칫 지나칠 뻔 할 정도로 초라했지만, 내부는 시원한 2궁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연혁과 대표적 작품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었던 상설전시의 곳곳에는 대표 디자이너들의 작품설명과 철학이 동영상 인터뷰로 만나볼 수 있어 한층 이해가 쉬웠다. ‘Steel Life’라는 타이틀의(발음은 지아 장 커의 영화제목과 같다) 기획전은 한 대형철강회사가 5-6명의 아티스트들에게 의뢰해 자신들이 생산하는 강철제품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고 전시했다고 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강철하면 무거워서 우직하고 또 무식해보이는감이 없잖아 있기에 더더욱 이러한 발상을 통해 잠재적 고객과 사회에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예컨대 국내의 제지회사도 종이를 이용해 작가들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보면 어떨까. 아니면 타이어회사나 제과회사도 좋다. 상상력만 있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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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를 놓쳐 박물관 내 까페에서 현지친구의 추천으로 요기를 했다. 밀라노에서 5순위 안에 드는 스타셰프가 운영하는 격조 있는 곳(?)이었는데, 깔끔한 한 상을 받을 수 있어 늦은 점심이었지만 기분은 한층 업! 메뉴는 계절채소와 호박씨 등의 견과류,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곁들인 샐러드와 (이름은 까먹었지만) 스튜와 치즈를 이용해 만든 리조또를 네모난 틀로 튀겨낸 요리였다. 직접 구운 빵도 맛보고, 맛볼 시간이 없었던 에스프레소도 한 잔. 까페 곳곳에 배치된 재미난 조형물과 시원스레 뚫린 오픈키친까지 완벽한 점심을 멋지게 보조하고 있던 오후였다.  

2009/08/25 00:05 2009/08/25 00:05

이탈리아 체류기 (6) 코드명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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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에서의 편안했던 1박을 끝내고 다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한 시간 반쯤 이동하니, 이탈리아 패션산업의 중심부 밀라노에 도착했다. 6-7년 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들렸던 것이 마지막이었지만, 여러 잊지 못할 기억들이 많이 남아 이 도시는 내가 가장 친근(?)하게 생각하는 곳이기도 하다. (최고의 카푸치노를 맛 보았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고, 꼬르소꼬모의 셀렉팅에 감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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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와 몬테나 폴레오네

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오모 광장으로 이동했다. 성수기였기 때문이었는지 역시나 두오모 광장 근처에는 여행객들과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지갑을 열고자 하는 비둘기 모이족’(이들은 유명광장 등지에서 곡식을 가지고 비둘기를 유인하는데, 그를 지켜보는 여행객에게도 곡식을 나눠주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 곡식을 받아 들게 되면, 대가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전형적인 수법이니 조심하시길)들로 붐볐다. 10년 이상의 보수공사기간을 마치고, 완성된 두오모의 모습을 보니 그 정교함과 수려함에 탄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두오모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편에 위치하고 있는 몬테나 폴레오네는 여전히 명품거리로서의 위상을 지켜내고 있었다.(전통적인 아케이드 형식의 몬테나 폴레오네는 발터 벤야민의 지적처럼 상품자본주의의 원조신전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몸소 체험하게 해주는 좋은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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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교회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선 사전예약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시기 별로 예약사이트를 개방하는 타이밍을 맞추어야만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데, 사이트 또한 불안정해서 제대로 예약하기에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결국 대행료까지 합쳐 6.50유로라는 적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한 행렬에 합류했다. 15분 간격으로 30명 정도의 방문객만을 허락하는데, 이들이 입장할 때도 삼중문을 통과해야지만 그림이 걸려있는 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현지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 그림을 유지/보수하는 데 일본 기업이 대대적인 스폰서십을 자청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스케일이란!) 10분간의 시간 동안 그림을 감상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엄격했던 보안 때문이었는지 관람객들의 기대감도 한층 고조된 듯했다. 은은한 조명아래 모습을 드러낸 <최후의 만찬>은 너무도 익숙한 그림이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감동이 덜 했으나, 여전히 그 안에 담긴 여러 읽을 거리와 조형미가 대작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Tip! <다빈치 코드>를 읽거나 본 이들에게는 훨씬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

 

2009/08/22 11:49 2009/08/22 11:49

이탈리아체류기 (5) 아레나 in 베로나

발표를 마치던 날, 나머지 일정을 마치고 늦은 오후 베니스에서 베로나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특이하게도 같은 2등석이라도 에어컨이 작동되는 칸과 그렇지 않은 칸이 있음을 발견했다. (왜 그랬을까.) 담담한 척해도 은연중에 긴장을 했는지 가는 기차 안에서 금방 골아 떨어졌다. 한 시간 반 남짓 서쪽을 향해 달리다 보니 아담한 도시 베로나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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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는 소박하지만 고풍스러운 전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디제 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건물들과 은은한 빛의 도시색이 눈에 들어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로도 유명한 이곳엔 낭만이 구석구석 숨어있는 듯 했다. 중앙역에서 내려 이 십분 가량 걸으면 베로나의 중심인 브라광장과 만나게 되고 그곳에는 바로 그 유명한 베로나의 원형극장, 아레나가 웅장한 자세를 뽐내고 있다.

1910년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은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고 한다. 베로나 부근에 진입하자 일행은 베로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고, 세라핀은 불현듯 그곳에서 내리자고 제안했다. 다짜고짜 아레나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켜게 한 세라핀은 아름다운 소리에 감탄했고, 결국 1913 8월 처음으로 베르디의 <아이다>가 아레나에서 공연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Arena di Verona Festival>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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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을 취하고 찾은 저녁 7시의 브라광장은 화려하게 차려 입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매일 다른 레퍼토리의 공연을 펼친다는 아레나 외부 한 켠엔 다음 날 공연의 조형물들이 눈에 띄었다. 여러 개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원형극장은 웅장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아테네의 신전이 신들의 향연이 벌여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베로나의 아레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를 제공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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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아레나의 메인 공연으로 유명한 <아이다>를 보려고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카르멘>을 예매했다. 자유석을 구하려다, 선착순으로 입장하기 위해 폭염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좌석 중 가장 저렴한 것을 골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유로를 호가했다) 프랑코 제피렐리의 무대미술이 흥미로웠던 아레나의 무대는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는 듯한 연출을 보여줬다. 공연 당일은 만석은 아니었지만, 입장 시 나누어줬던 촛불을 나눠 붙이며 아레나 속을 환하게 비추는 관객들 덕분에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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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의 기술과 무대는 없었지만, 아날로그적인 공연의 힘이 가지는 최상을 보여줬던 아레나의 오페라. 더운 여름 밤 속 협소한 자리의 불편함을 말끔히 씻어버리는 예술적 펀치였다. Grazie, Arena! Grazie, Verona!  

2009/08/21 11:18 2009/08/21 11:18

이탈리아 체류기 (4) 베니스 섬 기행

베니스에는 여러 작은 섬들이 있다. 해수욕장과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리도섬과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섬, 그리고 알록달록한 예쁜 집들로 알려진 부라노섬까지. 시간관계 상 같은 길목에 놓여진 무라노섬과 부라노섬만을 잠시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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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공방(좌)과 전시장(우)


베니스 유리공예의 역사와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는 섬 무라노에는 여러 유리공방과 고가의 유리공예품을 파는 전시장으로 가득하다. 운이 좋으면 열려진 공방 문 사이로 유리공예하는 모습을 훔쳐볼 수도 있다. (이열치열이 따로 없다. 더운 날씨에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유리를 보니;;;) 실수라도 해서 깰까 싶어 전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쉽게 손이 갈 수 있는 기념품은 없었다. 다소 원색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의 장식 때문에 설사 재량이 된다 해도 구입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었다. 묵었던 숙소에도 전시장에서 본 고가의 샹들리에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리 생각에) 촌스럽다고 함부로 대할 게 아니었던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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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서 예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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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창


폭염에 지쳐 배를 타고 조금 더 달려가니, 그리스의 산토리니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부라노섬이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푸른 지중해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하얀 벽과 푸른 지붕의 집들이 잊을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던 산토리니. 그 곳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부라노섬의 아기자기함과 알록달록함은 동화 속 나라에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늘상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른 개성을 자랑하면서도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집을 짓고 색을 칠하고 살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을 테고, 배로만 다니면 불편하니 차도 들여오고, 하다못해 오토바이나 자전거라도 들여오고픈 마음이 들텐데도 그곳의 사람들은 자연스러움에 느림에 익숙해진 듯 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물론, 서울은 세계에서 (돈만 있다면) 가장 편리한 도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인간위주’, ‘자기위주로 변화시켰는지 한 번 되돌아볼 일이다. 인간의 편의에 자연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자기다움에 인간이 순응해야 하는 이유. 바로 베니스의 작은 섬들에서 깨닫는 진리다.

2009/08/20 11:31 2009/08/20 11:31

이탈리아 체류기 (3) 베니스씨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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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면모가 많은 노신사와 같았다. 정신 없이 계속된 비행 이후에는 그 어떤 그림과 같은 풍경이 이어져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다가, 여독이 풀리고 정신줄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을 때면 그 엄청난 매혹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이다. 이탈리아에 오랜 기간 살고 있는 한 지인이 넌지시 던졌던 말처럼 이탈리아의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대단한 무언가였던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말이지만, 역사를 파는 덴 일가견이 있다. 조상 잘 만나 호강하는 격이랄까.

뜯어보며 볼수록, 요즘 말로는 그야말로 볼매베니스. 리알토 다리, 아카데미아 다리 등지에서 내려다보는 뷰도 그렇지만, 지도 없이 여기저기 헤매면서 마주치는 골목들, 자정을 넘어서까지도 시끌벅적한 바와 광장의 분위기,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반나절만 서는 장터, 베니스의 상징 고양이까지. 눈 안에 담아 그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고 싶을 만큼 베니스의 곳곳은 예술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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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사이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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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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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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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고 지나가는 야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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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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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 아저씨


우리나라에도 저 아래쪽 어딘가에 2의 베니스를 만든다고 한다. 된다고 믿고픈 이들이 몇몇 있는 줄로 알지만, ‘2의 무언가는 독창성을 잃은 모조품이 되기 십상이다. 베니스의 면면을 살피며 드는 생각은 시간이상으로 팔 수 있는 관광상품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묵혀야 가치가 사는 시간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버젓함이 더 중요한가 보다. 그런 마인드로는 관광뿐 아니라, 그를 만들어내는 정신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고마워요, 베니스씨. 케케묵은 진리를 알게 해줘서.

2009/08/18 22:14 2009/08/18 22:14

이탈리아 체류기 (2) 베니스비엔날레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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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ing Worlds>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6 7일부터 개막한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현장을 다녀온 것은 체류 2일째. 비엔날레는 크게 두 곳의 공간, Giardini Arsenale에서 진행되었다. Giardini는 월요일에 Arsenale는 화요일에 휴관을 하는 관계로 필자가 방문했던 화요일에는 Giardini를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 오픈 시간 전부터 많은 행렬로 입구는 붐볐지만, 느긋한 유러피언 행정에 기나긴 줄은 줄어들 줄 몰랐다. (여담이지만, 한국사람들의 성미가 급하긴 급한가 보다. 상대적으로 느린-그러나 그들에겐 정상적인-속도의 일 처리를 마주할 때면 기다림의 미학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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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rdini는 총 30개의 국가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 공원 안에 국가관들을 취향대로 찾아 다니는 맛이 있었다. 입구를 통과해 처음 들어갔던 곳은 러시아관으로 혁명적인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앞세웠다. 6000년 이후의 지구와 세상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그려낸 각각의 일러스트가 재기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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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를 끌었던 전시관은 노르딕 국가관(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었다. 어느 게이작가의 죽음을 영화 세트장처럼 꾸민 것이 특징이었는데, 관객들에게 그를 죽음으로 몰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듯 여러 단서를 남겨준 것이 쏠쏠한 재미를 자아냈다. 물론 그 안에 놓인 여러 설치작품과 디자인, 회화작품 등은 이 전시를 위해 직접 만든 것이어서 스토리가 있는 전시, 디자인과 파인아트의 경계를 해체하는 전시로서 각광받았다. 특히 노르딕 국가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특유의 정갈한 분위기와 그들의 가구디자인, 실내디자인 철학이 잘 맞아떨어져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면서도 자신들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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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덴마크관도 이러한 재기발랄함에 동승하는 듯했다. 수집문화에 대한 냉소와 그 안에 숨은 여러 개의 스토리와 글로벌리즘과 관련된 여러 생각들을 찾아낼 수 있게끔 설치되었다. 유럽의 어느 고급 가정집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부서지고 왜곡된 설치물은 오랜 역사 동안 지속되어왔던 유럽의 수집문화가 내포한 허영을 꼬집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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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관은 지리적으로도 찾기 쉽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져 조금 아쉬웠다. 초청작가인 양혜규의 설치작품 또한 현지에서는 난해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일본관의 거대한 사진작품은 일그러진 미를 표현하려고 했지만, 이미지의 지나친 그로테스크함 때문에 애정을 가지고 감상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미국관은 방문객 숫자까지 컨트롤해가며 까다로운 면모를 보였지만, 브루스 나우만의 8,90년대 유명작품들을 전시해 참신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우만은 이미 정상을 차지한 작가이고, 그의 신작이 아닌 20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을 신진작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오마주도 아닌 형식으로 다시 전시하는데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프랑스관은 전시관 내부를 칠하고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 않았는지 악취가 심해 다섯 발자국 이상 진입하기가 어려울 정도였고, 독일관은 목재가구와 나레이션을 접목해 전시했지만 큰 호응은 없었다.

비엔날레의 중요성은 누구나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유럽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은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조금 더 효과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과 예술강대국이란 단어를 아직 동일시 하기에는 이르지만, 노르딕 국가관처럼 스스로 가진 강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어떤 이는 역사를, 어떤 이는 미래성을 어떤 이는 엽기와 충격을 내세우는 가운데, 과연 우리의 색깔,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되는 기회였다.   

2009/08/17 10:57 2009/08/17 10:57

이탈리아 체류기 (1) 베니스 입성

*오늘부터 며칠 간은 장장 8일 간의 이탈리아 체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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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비행시간과 대기시간을 합하여 거의 20시간에 달하는 강행군 끝에 베니스에 도착했다. 외세의 침략을 피해 바다 위에 세운 도시 베니스. 10세기부터 번영하기 시작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문화는 15세기 유럽의 중심부로 기능하기에 이른다. 라이벌 제노바를 제치고, 숙적 터키와의 끝없는 싸움가운데서도 지출 줄 몰랐던 베네치아 인들의 숨결이 깃든 곳. 오래된 역사소설 안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베니스를 2009년의 눈으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좀 전의 피로를 떨쳐낼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이야기>,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의 주요기점, 비발디의 <사계>가 태어난 곳 모두 베니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베니스가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도시인지 짐작하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가 낳은 거장, 루치아노 비스콘티의 영화 <Morte a Venezia>(토마스 만 소설이 원작) 속 주인공 작가가 흠모하던 소년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하던 때 흘러나왔던 말러 교향곡 5 4악장을 베니스의 노을을 등지며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하는 황홀한 상상까지 더한다면, 예술적 영감이라는 부분에서 그 어디에도 베니스에 필적할 만한 곳은 없지 않을까 싶다.

육지로 이어지는 연결통로 로마광장에서 바포레토(수상버스)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하는 동안, 멍하니 베니스의 전경에 취했다. , 드디어 베니스.



2009/08/14 11:10 2009/08/14 11:10

3 Reasons To Le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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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TV 광고 중


아시아나와의 끝없는 전쟁에서 올드한이미지의 대한항공은 젊음을 택했다. 미국노선운항을 집중적으로 광고하는 TV CF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시리즈는 특히 2,30대를 타겟으로 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대학생활의 시작=유럽배낭여행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던 시절이 불과 십 수년 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식상한 유럽대신 미국으로라는 주문이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이 광고에서도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사실은 젊음, 또는 젊다는 것이 떠날 수 있는 자유(권리)로 치환된다는 것이다.

자고로 여행이 육신의 양식으로, 사회적 기본 교양으로 기능하던 시절이 있었다. 몽테뉴는 여행을 일컬어 인생이라는 학교의 선험적 예행연습이라 했고, 오스카 와일드는 여행의 활동성으로 인해 정신이 정제됨을 찬미했다. 또 괴테는 어떠했는가. 그는 자신의 유명한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그곳에서 우울한 자신의 고향 독일로 우리 모두를 구원할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그 말은 괴테의 문학적 영감으로 실현되었다.

#1 나에 대한 인식

MBC 예능프로 <명랑히어로>의 한 코너에서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베스트셀러의 길어 들어선 작가 김동영의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는 요즘 나온 여행서와는 조금 차별된 책이다. (more) MBC 라디오 이소라의 오후의 발견에서 음악작가로서도 발 담고 있는 저자는 서른이 되던 어느 날, 이때까지 모았던 돈을 몽땅 투자해 미국 66번 국도를 따라 국토를 횡단해 보자는 당찬 계획에 돌입하게 된다. (more) 90년대 이후부터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이와 같이 떠났던 사람들이 간간히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변지인들의 눈에는 객기나 허세, 현실감각 제로 등으로 비칠 수 있는 여행들이 떠나는 이들에게는 유의미한 무언가로 작용했다. 그들은 사회고 뭐고, 일단 나를 놓아줄 수 있는,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있는 경험을 위해 시간과 돈을 바쳤고, 그 이후의 효능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훌쩍 떠남 자체가 효율/기능이라는 가치척도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단 (아직) 젊다고 해서 무조건 떠날 필요는 없다. 그 어떤 강박관념도 작용치 않고, 그 누구 하나 떠나지 못해 비겁하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환경에 놓이는 상황 자체가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형성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구태의연한 사춘기 질문에 허덕인다고 손가락질하는 그이들의 마음에는 과연 확고한 상()이 자리잡고 있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자신과 관계 맺고 있던 모든 중요했던 가치들과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관계 맺기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인식의 출발이고, 여행을 떠나는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2 너에 대한 이해

지난 26 KBS 1TV <사미인곡>을 통해 방송되었던 ‘180일간의 트랙터 다이어리에는 스물 여섯의 강기태라는 청년에 대한 조망이 있었다. (more) 2008 9월부터 장장 6개월이란 시간 동안, 후원을 통해 얻은 트랙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며 농촌에 대한 현실을 알리고 싶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more) ‘그는 왜 떠났던 것일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떠나고 싶어도 함부로 떠나 수 없었던 시절에 비하면 그의 여행은 자유롭기 짝이 없지만, 요즘의 상황에선 외부적인 요인보다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떠나기가 쉽지 않음을 감안하면, 결론적으로 떠나지 않는 이들이 더 많음은 같지 않을까. 누군가 끊임없이 떠나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며 얻는 이야기들을 전해 들으며 가장 많이 취하는 태도는 , 그래. 너는 떠나라라는 냉소일 것이다. 굳이 내가 너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지, 또 그래서 어쩌자는 건지,하며 끝없는 자기 안으로의 냉소와 부딪히다 보면 떠나는 것뿐 아니라, 그 어떤 행동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강기태의 여정은 고됨 그 자체이다. 노숙과 허드렛일을 반복하면서 그가 과연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그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제3자의 눈에도 그의 떠남이 가치 있는 것은 그가 최소한 새로운 환경에 의해 형성된 상황에 처해보고, 그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순간들을 수집한다는 부분이다. ‘내가 아는 나남이 아는 나를 조금씩 꿰어 맞추는 작업도 때늦은 성장통에 포함되기에, 떠나는 게 낯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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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츠키지 시장, pic by b. kang


#3 떠남, 그 자체에 대한 거부할 수 없음에,

비단 원인-결과론 적으로 떠남에의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역마살’, ‘장돌뱅이 인생이라는 표현들이 부정적으로 이해되었던 것만 보더라도 정착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무한한 불신이 따랐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도, 특히 초---대학-취업이라는 일방향적이고 기타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어디가 되었던 떠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정착이라는 오래된 습관도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떠나기 위한 떠남이 아닌, 머무르기 위한 떠남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숨어있음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나는, 또는 떠남을 계획하는 모든 이들의 머리 위에 축복이 있으리라. 지금을 살아가기 보단 살아내려는 그 모든 움직임에 살아 숨쉬는 젊음이라는-레이블이 붙어있다.  

2009/03/31 17:17 2009/03/31 17:17

짤막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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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멋진 하루

다분히 있을 법한 인물이었다. 희수(전도연 분)도 병운(하정우 분). 특히 병운이란 인물에 대한 묘사는 주변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초긍정의 캐릭터여서 한층 공감이 갔다. 여기저기 얻어터져도 (전혀 열 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하면서 극도로 체화된 화해의 기술또는 이해의 기술을 몸소 실천하는 이, 병운. 혹자의 눈에는, 아니 그런 그를 한때 (어쩌면) 열렬히도 사랑했던 희수의 눈에는 그런 그가 속도 (배알도) 없어 보이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지만, 병운은 그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문법을 터득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 정혜>를 통해 이윤기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 나른한 호흡에 동승할 수 없어 괴로웠었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멋진 하루>로 이어지는 그의 연출법에 와아하고 탄성을 내지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밀함에 대한 밀도에는 진심 어린 경의를 보낸다. 영화를 보며 조금은 쓸데없는 샷들이 많이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로케이션 헌팅은 참 열심히 했단 생각도 들었고, 전도연의 스모키아이가 꽤나 어울린다는 이런 저런 잡생각을 했다. 간간히 나오는 노래도 괜찮았고, 특히 타이틀 나오기 전까지의 부분 편집이 딱이었고. 그래도 좀 더 거리두기를 했더라면 여느 일본소설들같이 무미건조하면서도 무채색의 향(이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을 전달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식 같은 영화를 그렇게 뗐다 붙였다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걸 감안하면, . 한 친구의 말마따나 남에게 강추하긴 어렵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가을영화가 되겠단 생각은, 한다. 보세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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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행의 종말

수년 전에 <보그 탤런트 콘테스트>(일종의 글쟁이 뽑기였는데,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난 것 같아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든다. 편집장님, 어떻게 좀 기사회생 시켜주시든가,)의 지원 조건은 자기소개서’, ‘문화비평’,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영향을 끼친 인물 인터뷰등 세 가지의 글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일전에 소개했던 소설가 김영하 인터뷰가 제출했던 세 글 중에 가장 높이 평가를 받아 당선이 되었지만, ‘여행의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했던 문화비평도 마음 속 한 구석에 아쉬움 아닌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줄여 말하자면,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여행은 이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골자로 하고 있는 에세이였는데, 아마도 조금 더 섹시한 제안을 하지 못했던 게 패배(?)의 이유였던 듯. 갑작스레 이제 와서 다시 여행의 종말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제 갑자기 부친께서 내년 가족 모두 하던 일을 올 스톱하고 일년 동안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제안을 하시는 바람에 여행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하아. 누구나 꿈꾸던 바가 아닌가. 세계여행이라. 남들 펀드에 혈안이 될 때, 여행이나 가자는, 참으로도 한량 같기도, 로맨티스트 같기도, 부르주아 같기도한 아이디어에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 떠나요로 응답하지 못했지만, 심정적으로는 모두 다 재밌겠는 걸을 외쳤으리라. 모친은 다니는 회사 걱정을(휴직을 일년이나 하고 난 다음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남동생은 다닐 회사 걱정을(자신이 천재라며 빨리 사회에 자신의 재능을 헌신하고 싶다는 지극히 요상한), 그리고 나는, 뭐 일년쯤 휴학이야 백 번이라도 해 줄 수 있지만, 그다지 오래 다닐만한 학교는 아니라는 생각에(교수님들이 아시면 안 되는 지극히 비밀스런) 머뭇거리고 있다. 아마도 일 년은 너무 심했고, 방학 동안만이던 반 년만이던 (가족 모두 건강할 때) 떠나는 마지막 여행(?)’을 하며 어쩌면 십 년 후에는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이동하고, 직접 체험하는 식의 여행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예감이 든다. (.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세기의 마지막 아날로그 세계여행도 역...인 이벤트가 될는지도.) 

 

#3 부귀영화

귀여운 면이 많은 과 친구와 서울을 오가며 기차 안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그 친구와 나의 관심사가 꽤나 비슷하단 사실에 흠칫 놀랐었다. 특별히 괴기스런 부분이 있지도,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적당한 보헤미안 마인드. 새로운 거 찾아 보기 좋아하고, 어디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의 우리 둘은 문득 부귀영화란 단어를 남용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문맥 상 보면 이렇다.

: 어제 공연은 어땠어?

: , 달랑달랑하게 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러나.’

: 어머머. 나도 알아. 딱 그 느낌. 진짜 이게 왠 생난리인가 싶고.

그다지 적합한 단어선택은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의미상으로는 그보다 나은 표현이 없겠다 싶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에휴. 기다렸던 공연이나 소개팅이나 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다. 물론 전자는 결국 보는 게 나았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결국 안 보는 게 나았다는 의미지만 말이다.

 

#4 프로젝트로의 탈출

두 가지 꿍꿍이를 꾸미고 있다. 하나는 기획이 더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이고, 다른 하나는 창작자로서 참여하는 프로젝트이다. 지난 주에 한 여장부 교수님앞으로 뭐할 거냐는 다분히 답 안 나오는 질문을 갑작스레 하시길래, “다방면에 능통한 프로듀서가 되려구요.”라는 한 편으로 보면 마음에 있고, 다른 한 편으로 보면 무슨 헛소린가 싶은대답을 하고야 말았다. , 요즘엔 장기적인 계획은 다 필요 없고, 단기적인 실천만이 살 길이라는 식으로 살고 있어 그런지, 일단 눈 앞에 닥친 놈들부터 해결하다 보면 뭔가 보이겠지 싶다. <M>의 안개는 도처에 깔려있다. 그걸 더 옅게도 짙게도 할 수 있는 재미난 세계로의 입문.  

 

#5 서른의 연애

서른을 다른 단어로 대치할 수 있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단호하게 무기력을 내세우겠다. 일찌감치 정신 차리고 어엿한 사회의 역군으로서 기능하는 나의 친애하는 동년배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서른은 일종의 오춘기에 접어드는 요상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십 대 초반에 전 생애를 걸쳐 할 고민을 다 해버려서 인지 되려 요즘은 단순하고 명료한데, 주변인들은 영 그렇지 못한가 보다. 쿨이고 시니컬이고 대부분의 한국작가들이 싫어하면서도 차용할 수 밖에 없는 이러한 멘털리티는 도처에 깔려있기에, 그것도 깊숙이 드리워져 있기에 함부로 제거하거나 터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고체계가(어쩌면 생활태도가) 연애라는 필드에도 여지없이 발휘되다 보니, 외롭기는 한데 누군가를 옆에 두기는 좀 귀찮고,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 식의 냉랭한 기운이 지배적이다. 뭔가 열정 따윈 잊은 게냐고 따지고도 싶지만, 그럴 기력으로 다른 거나 하는 게 낫겠다 싶은 또 다른 무기력이 작동한다. 참나. 여러모로 피곤한 나이다.

 

#6 문화는 네게 있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도 약발이 다 된듯한 마당에 문화가 중요하단 타령을 하는 게 웃겨 보이기도 하지만, 명색이 문화란 글자를 앞에 달고 있는 학교에 몸을 담고 있자니 (필연적으로) 문화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AT(아트테크놀로지) 심포지엄에도 다녀왔지만 서도 학제 간 연구, 그 가운데서도 문화 또는 예술과 기술 또는 과학과의 접목은 (비단 정부주도의 미래사업이어서가 아니라) 실로 중요한 화두로 점쳐지고 있다. 물론 CT(컬쳐테크놀로지)가 기술 베이스로 문화를 받아들이고, AT가 예술을 베이스로 기술을 받아들인다는 개념적 또는 이론적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체념적 비판을 해보자면 이렇다. 문화든 예술이든 오늘의 삶에 있어, 나아가 미래의 인류에게 있어 이가 중요하고 그와 기술(과학)이 상관관계를 맺는 과정을 살펴보고, 이차적인 합성효과(시너지)를 기대한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를 교육하고 독려하는 과정에 있어서 비단 새로운 트렌드 섭렵하기새로운 창조물 보여주기식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교육이란, 특히 이와 같은 실효적/미래적 학문에 대한 교육이란 정부 산하 사업이란 파이의 부스러기 많이 줍기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전적인 개방과 자유롭다 못해 무질서해 보이기까지 한 전방위적 교류(소통)을 통해서만 미래적 코드를 조금씩이나 이해하고, 그를 넘어선 제안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문화는 네게 있어 무엇인가. 너무나 원론적이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AT CT던 순수엔지니어, 순수아티스트의 영역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그 둘간의 영역을 이어주는 멀티가교로서 기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던가. Early Adapter만은 부족하다. 다져진 식견으로 맥을 짚어 낼 줄 아는 In depth Visionary가 절실하다.


2008/10/11 13:17 2008/10/11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