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역사는 본질적으로 ‘그’의
이야기다. 고로 ‘그’의
이야기들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history’는 그렇게 거창한 개념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사사로이 넘길 수 없는 무언가 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누군가
일수도 아무도 아닐 수도 있는 그의 이야기. 그게 힘을 받는 순간은 바로 개인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로 중첩될 때이다.

퇴역을 앞둔 레슬러 랜디는 본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자신을 ‘랜디’라고 불러주길 원했다. 로빈이라는 평범한 이름보다는 ‘레슬러 랜디’가 자신을 더 잘 표현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랜디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자신을 일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결국은 그를 위해 링 위에서 죽음까지 고사한다. I see what you
don’t see. 최근 길을 가다 우연히 본 문구가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랜디의
삶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환호성과 남들이 보지 못하는 환영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바로 링 위에서 펼쳐졌다. 비록 그가 실패한 삶의 주인공이고, 목숨이
내일모레하는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는 바로 ‘순간’에 전적으로 살아있고, 전적으로 ‘히어로’다.

대니 보일이 신작으로 눈길을 끌고 있는 이 영화는 자칫 ‘시티 오브
갓’을 떠올리게 한다. 이국적인 정취와 빈민가에 버려진 아이들, 그들의 기구한 운명. 혹자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자말의 이야기가
식상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하듯 열린 결말이나 비극에도
(어차피) 호의적이지 않다. 영화를 통해 ‘자말 말리끄’라는 이름은 수십 번도 더 호명된 것 같다. 포기하지 않는 사나이. 평범한 성질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절대적으로 비범한 삶을 산 뭄바이 출신의 청년. 그의 인생에 대한
퀴즈의 정답은 그의 삶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였다. 그러나
결국 그 ‘예정된 삶’을 살아낸 것은 온전히 자말의 몫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 우리는 그렇게 매일 그가
아니면, 그녀가 아니면 안 되는 시간들을 묵묵히, 또는 멋지게
이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니 핑크’ 이후에 다시 접하는 도리스 되리 감독의 근작에는 개인적으로 낯익은 도시들이 등장한다. 바이에른의 알고이, 베를린, 그리고 도쿄. 그리고 또 독일어. 독일 가곡을 들을 때나 독일 시를 읽을 때 느끼는 것이지만, 독일어는 모든 언어가 그렇듯 고유의 색채를 가지고 가장 적절한 장르에 빨려 들어가는 맛이 있다. 비록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나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조금 불편한 감이 있지만. (쩜쩜쩜) 그래도 독일감독이 이 정도로 동양적인 감성을 가미해 연출을 선보였다는 것이 놀랍다. 죽음과 그 이후의 남겨진 이들의 삶에 대해선 많은 영화들이 많은 이야기를 해왔지만, 이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 새롭다. 죽은 자와 살아있는 자, 남자와 여자, 파리와 손수건은 어쩌면 너무나 다르지만 알고 보면 가까이, 같은 존재로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정말 지구종말이 가까워진 게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에 잠겨있다거나, (솔직히 그렇게 엉뚱한 것 같지도 않다. 지구의 ‘막장 드라마’가 여기저기서 펼쳐지니깐) 억울하게 진 WBC 결승전에 분함을 미처 떨쳐버리지 못했다면, 추운 겨울 혀 끝 뿌리까지 덥혀주는 어묵국물과도 같은 이 영화들을 목구멍으로 스르륵 넘겨보자. 쿨해서 징그러운 세상사에 핫(!)하게 좀 찡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