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Comes Another Bubble
일전에 친구가 일러 준 ‘냉소적 웹
2.0’ 비디오 클립이 있어 소개한다(블로그 바로가기).
제목은 Here comes another BUBBLE. <The Richter
Scales>라는 음악그룹(다양한 장르를 소화해 하나로 단정짓기 어려움)이 만든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서 즐감하길 바란다(The Richter
Scales 홈페이지 바로가기).

일전에 친구가 일러 준 ‘냉소적 웹
2.0’ 비디오 클립이 있어 소개한다(블로그 바로가기).
제목은 Here comes another BUBBLE. <The Richter
Scales>라는 음악그룹(다양한 장르를 소화해 하나로 단정짓기 어려움)이 만든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서 즐감하길 바란다(The Richter
Scales 홈페이지 바로가기).


씬#1 짜파구리
“너 짜파구리가 뭔지 아냐?”
“아니.”
“무식한 자식.”
위의 대화는 일상적인 30대 친구간에 이뤄졌다. 언어∙문화적으로 접근해보자면 이 대화에서는 ‘짜파구리’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무식함과 유식함’에 대한 여부가 판가름 남을 알 수 있다. 실제 이 대화 뒷부분에는 제3의 인물이 “어, 그거 네O버 검색어 1위에도 오른 거 봤는데…”라며 덧붙였다. 결국 이 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물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주요포털 사이트의 검색어가 일상다반사에서 ‘유∙무식’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채택되었다는 점과 그를 ‘적재적시’에 사용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매우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비취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씬#2 파워블로거
잘 아는 파워블로거가 한 명 있는데, 그의 삶은 거의 ‘블로깅’에 매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뭐든 취미의 선상을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면 남모르는 괴로움이 시작되듯, 그의 삶도 점차 블로그 안팎의 자아정체성을 의심할 수준으로 심화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모 시사 다큐에서 수십 억대의 재산을 모은 30대 초반의 직장인이 ‘자신은 취미도 특기도 없다’며 인터뷰를 하던 것이 문득 오버랩 되었다. 뭐든 ‘중독 징후’가 발현되면 사생활이고 뭐고 없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중요한 건, 블로그/블로깅이 보편화되면서 국내서만도 하루 평균 만 명을 넘나드는 (소위 말하는) 파워블로그가 수 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블로깅만으로 생계를 넉넉히 책임짐은 물론, 여느 성공 부럽지 않은 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들도 있어, 무조건적인 추앙을 받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블로그를 (이와 같이) 운영하고 있고, 스스로의 흥에 취해 열심을 다하기도 했지만 문득 드는 생각은 내 블로그를 봐주는 불특정 다수를 위해 개인의 생활을 희생하는 행위가 늘상 고귀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자신이 만들어내는 시시콜콜한 잡담에서부터 거대담론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담기는 내용과 그를 어떻게 해서든지 ‘최대한 신속하게 배달(!)’하는 행위에 대해 종종 회의를 느끼게 된다. 외람된 비교인지 모르겠지만, 예전 소설 창작 시간에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는 동급생의 외마디가 귓가에 맴돈다. (물론 블로그를 통한 미디어의 변천을 칭송하는 이들에게 ‘블로깅=일기’라는 공식은 입에 담지 못할 만큼 저급한 것이겠지만, 결국 ‘일기보다도 못 쓰는 인터넷 기사’가 판치는 마당에 블로깅이라고 지나치게 신성시되는 것도 조금 우습긴 하다. 세컨드라이프도 어디까지나 세컨드라이프이지 퍼스트라이프가 될 수 없듯, 블로깅도 블로깅 자체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후에 발생할 지 모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에 낫지 않을까.)
씬#3 지식의 대유행
지식의 유행은 그 매체를 달리 했을 뿐, 예전에도 존재했다. 날이 갈수록 그 유행패턴이 측정하기 어려운 형태로 발전해가는 까닭에 그에 접근하는 방법도 소화하는 능력도 천차만별이다. 문제는 예전에 아날로그적인 형태를 통해 유행했던 지식은 사회에 대한 일정한 책임의식까지도 포함한 경우가 많았고, 그에 따른 담론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졌던 반면, 오늘의 디지털 안에서 유행하는 지식의 속도는 그 표면을 ‘핥기에도’ 부족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식이 이성으로 이행되는 과정’을 생략하기에 알맞은 형태로 발전했고, 굳이 앨 고어가 주창하지 않더라도 일종의 ‘이성위기론’이 대두되는 시점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웹 2.0은 집단지성의 출현에 환호했고 지식의 접근과 활용에 있어서의 민주화에 열광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공공의 이익을 넘어서는 역할까지 감당할 수 있느냐는 부분은 미지수이다.
인터넷 속 시공간은 무한대로 탄력적이다. 또한 그에 따른 정보에 대한 임시응변적 잣대는 때때로 폭력적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웹이 다수의 비핵심을 가능케 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또다시 변질된 소수의 핵심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속도에의 강요가 깊이에의 성찰을 비웃는 시대는 서글프기 짝이 없다. 풍요가 과포화상태일 때 희소성이 더 빛을 발하듯, 엄청난 양의 정보가 빠르게 순환하는 사회에서 (그만큼) 지혜에 대한 요구가 한층 높아지길 바라는 건 과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