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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6/16  아침형 인간 vs. 올빼미형 인간
  2. 2009/06/10  Follow Your Instinct (2)
  3. 2009/02/07  컨버전스의 조건 – 똘레랑스의 창의성

아침형 인간 vs. 올빼미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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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아침프로를 보다 아침형 인간에 대한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패널 또한 아침형 인간쪽과 올빼미형 인간쪽으로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각자 파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문제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 있었다.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의 성실도나 창의력을 판단했기에, 반발도 거셌다. , 결론은 각자 생긴 대로 살자였지만… (허망한 1)

진화론적으로 보자면 현대화된 사회문화적인 여건 안에서 파생된 올빼미형 인간이 훨씬 진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침형 인간이 후퇴한 인간형이라거나,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침형 인간은 이전 시대부터 존속되어온 삶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쪽이고, 올빼미형은 조금 더 자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자는 쪽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불이 생겨나기 이전에는 물론 아침형 인간이 대세였다. 서구근대의 칼빈주의와 같은 사상은 거기에 성실도라는 명분을 더해 사람들이 모두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쪽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 덕에 시간의 개념이 많이 변화한 지금, 올빼미족이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밤에 일을 하는 이들 중에는 예술적인 성향이 농후한 이들이 많다고 한다. 밤이 될수록 감성적이 되고, 그를 돕는 호르몬도 더 활발히 생성된다. 낮에는 할 수 없는 생각, 사회 규범에서 일탈하는 사고, 정답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은-밤에 더 잘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한 까닭에 창의적인 사람들 중에는 올빼미형이 많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물론 아침형 인간도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고, 그 안에서도 진화하게 되어 있다. 현대적 인간형이 무엇이냐-고 물어 하나만 정할 수는 없다. 대신 사회가 일률적인 타임라인 안에서 움직였던 이전 시대보다는 훨씬 복잡한 구성을 띨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2009/06/16 09:58 2009/06/16 09:58

Follow Your Instin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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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창작에 관해서는 가장 솔직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나리오 쓸 때 담당 선생님께서 권해주셨던 책인데, 여러분들에게도 적극 추천합니다.>


유명한 소설가가 한 분 계셨습니다.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문하생을 구하지 않느냐고 여쭈었습니다. “난 그런 것 안 합니다라는 대답만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재미있는 일을 찾으세요. 나도 최근에 그랬으니깐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성공한 멘토가 한 분 있었습니다. 미래계획을 물으셨죠. 답을 했지만,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시더군요. “왜 여러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죠? 한 가지에 집중하세요.”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그리곤 당신의 여러 곳의 일들을 위해 걸음을 돌리더군요.

당신이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더 넓게는 창의적으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엄연히 말해 이름을 알린 선배 예술가도 힘 있는 유명인도 당신을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특히나 매일의 선택 가운데 놓여, 어디로 가야 할 지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 어떠할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면 더더욱 말이죠. 한 때는 기대했던 게 사실입니다.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이,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 롤 모델이 될 법한 이-들로부터 나의 삶을, 그 지평을 드넓게 해 줄 수 있는 한 마디를 말이죠. 그러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절대 누구도 당신의 질문을 대답해 줄 수 없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그 답이 당신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민이라는 개념을 깨우치기 시작한 청소년기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앞으로도 몇 년간 당신은 무척이나 다양한 이유들로 밤잠을 설칠 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처럼, 과거와 달리 지식이나 부도 안정된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사회 안에서는 고민의 깊이가 한층 더하겠죠. 그래서 우리는 쉽게 그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마련입니다.

위의 두 가지 예처럼 성공한 이의 삶을 답습할 수도 있고, 그로부터 조언을 얻으려고도 노력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이들과 다른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지극히 주관적이고 표피적인 말들에 좌지우지 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당신이 닮고자 하는 누군가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쉬이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거나 자신에게는 공정하게 적용하지 못했던 말들을 다른 이에게는 쉽게 던지게 됩니다.

이보다는 자칫 불안정해 보이지만, 확실한 방법은 자신의 본능을 따르는 겁니다. 스스로 느끼는 재미와 행복, 그 이상의 답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요? 너무 근시안적이라고요? 미안한 얘기지만, 어차피 장기적인 계획대로 진행되는 삶이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설사 계획세우기가 취미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사는 분들은 굳이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더 살아갈수록, 삶은 계획처럼 예측가능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겁니다.

물론 본능만을 믿고 따르기엔 불안한 요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를 즐기기 시작한다면, 그에 내어 맡기기 시작한다면, 최소한 당신의 정신적 부담감은 한층 덜 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사는 사람은 눈에 쉽게 보이지만, 재미있게 사는 사람은 드무네요. 어깨 너머 자신의 본능대로 살고 있는 이들을 부러워만 말고, 까치발을 서서히 내려놓으세요. 이제 남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만 살아가는 겁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고,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바로 당....    

2009/06/10 15:03 2009/06/10 15:03

컨버전스의 조건 – 똘레랑스의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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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다보스 포럼이 끝나고 가장 화제가 됐던 이슈 중의 하나가 콜래보 경제학이었다. 기존의 연관성 없어 보이던 영역끼리의 협력체계가 나타나고, 새로운 가치창출이 가능해 지면서 너도나도 하이컨셉의 블루오션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젠 고리타분하게까지 들리는 수준의 실례인 이베이나 애플도 소위 말하는 콜래보 경제 1세대로서 그 위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다보니, 실제 콜래보레이션이 되었든 컨버전스가 되었든 하는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되었다.

상상을 해 봐. 스포츠에서 공을 다루는 종목이 얼마나 많은지. 근데 한 공간에 축구선수, 배구선수, 농구선수, 야구선수 모두 모아놓은 거야. 그래서 축구선수가 자기 발의 테크닉을 이용한 여러 가지 전술을 보여주니 야구선수가 그러는 거지. ‘아니, 손으로 던지면 되는 데 왜 발로 꼭 차야 해요?’ 이건 각각 종목에 대한 기본적인 룰을 무시하는 행위지. 이건 동상이몽이야. 공이라고 다 같은 공이 아니잖아.”

최근 한 지인은 그럴싸한 비유를 늘어놓았다. 컨버전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보다 더 리얼한 묘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전통적으로 획일화 되어있던 학제 간의 장벽을 허물고, 경계의 학문을 발전시켜보자는 의미에서 다양한 학제간 전공을 제시하고 있다.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트렌드와 신세대는 그에 경도되었지만 여전히 (짧은 역사와 무한한 시행착오 덕에) 그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문제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컨버전스의 절대 1 조건, 바로 똘레랑스가 전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너무나 다른 사고의 구조를 가지고 살아온 이들을 한데 모아놓는 것은, 어쩌면 그 발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려야 하는 일이다. 동시에 그만큼 위험부담이 큰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너무 활발히 교류한 나머지 창의성의 폭발로 이어질 수도 있고, 너무 무관심한 나머지 창의성의 마이너스 현상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결국 예술, 공학, 정치, 디자인, 경영, 생물 등의 집합체가 가질 수 있는 잠재성에 대한 의심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관용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분야가 가지는 고유한 가치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똘레랑스가 전제조건이 되어야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홍세화씨 덕에 널리 알려진)’똘레랑스는 쉽게 뱉어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개념이다. 누구든 난 널 이해해라고 말하지만, 전심으로 그를 이해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통섭 또는 통합이란 전제아래 모인 분야라면 그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너무 당연하게까지 들리지만, 현재 컨버전스라는 이름 아래 모인 집단에서 가장 잊혀지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자신이 익숙해져 있는 사고의 잣대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은 손쉬운 만큼 위험한 일이다. 진정한 창의성을 발로를 맛보기 위해선 단순히 냄비에 총천연색의 재료를 넣는다고 해서 맛있게 섞이지는 않는다. 백남준의 비빔밥론이 그 맛을 내기 위해선 내 기준으로 너를 판단하는 것이 아닌 내가 아닌 기준으로 너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함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컨버전스에 앞서 똘레랑스가 먼저임을 깨닫는 오늘 이길 바란다.  

2009/02/07 11:55 2009/02/07 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