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인의 비애
이따금 동시대인으로서 비애를 느낄 때가 있다. 그 감정이 상대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전자가 무작정 안타깝고 슬픈 것이라면 후자는 뭉클하면서 자책하는 어떤 것이랄까

이틀 전 두산아트센터 Space 111에서 있었던 <사천가>의 마지막 공연은 이 두 가지 종류의 비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작품에 투영된 대상에 대해, 그리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매개인에 대해. 브레히트의 희곡을 오늘날 서울의 풍경에 맞게 재해석한 이자람의 창작판소리극 <사천가>는 이렇게 풍성한 감상을 선물했다. (관련기사 1 + 2)
어릴 적부터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던 소리꾼 이자람은 나와 같은 또래들이 가장 질투하는 대상일 것이다. ‘여대생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여성’이 메이저 방송국의 유명앵커인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이자람은 ‘또래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끼와 장기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어지러운 시대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하나 둘씩 넓혀가는 것. 그 하나 빠질 것 없는 길을 걸어왔으면서도 안주하게끔 하는 요소들과 끊임없이 단절을 시도하는 것. 새로운 생각을 단순한 공상에 그치게 하지 않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 고민하는 것. 그리고 행동하는 것. 나는 그녀만큼 소통하는 이를 본 적이 없고, 그녀만큼 열정 넘치는 이를 보지 못했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럴듯한 정보 너머로만 알고 있었던 대상을 한 번의 공연으로, 그 진한 만남으로 잘 알게 되었노라-고백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가. 그만큼 이자람은 생면부지의 이들과 적극적으로 만났고, 잊혀지지 않을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그 시각 이후부터 나는 그녀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질투가 지지부진한 감정싸움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 그녀를 향한 부러움과 존경을 통해 나를 더 돌아보고, 나의 작업, 나의 숨 하나하나를 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일 수 있게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리오. 나는 그녀와의 동시대인으로서 비애를 느낀다. 그러나 이런 비애라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기에, 달게 삼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