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체류기 (7) 밀라노의 자존심을 맛보다

밀라네제(Milanese, 밀라노사람을 뜻함)의 자존심이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패션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조금 더 넓게 보자면 축구와 디자인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밀라노는 AC밀란과 인터밀란이라는 쟁쟁한 축구팀의 본거지일 뿐 아니라, 패션디자인을 주축으로 이탈리아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선도도시이기 때문이다.

San S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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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름은 죠세뻬 메아짜 스타디움(Stadio Giuseppe Meazza, 죠세뻬 메아짜는 3-40년대 AC밀란과 인터밀란 두 팀 모두에서 활약하며 2번이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축구선수의 이름)이지만, 산 시로(또는 간단히 시로)로 더 잘 알려진 AC밀란과 인터밀란의 경기장을 찾았다. 1926년 완공된 이후 여러 차례의 레노베이션을 거친 이 경기장은 현재 8만 여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이는 전세계 Top 10에 드는 규모를 자랑한다. 산 시로 경기장은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피콜로미니에 위치하고 있었다. 방문했던 8월초 당시는 본격적인 시즌이 시작하기 2-3주 전으로 한적했지만, 박물관과 경기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심심찮게 보였다. 40분 남짓한 경기장 투어는 경기장과 관련된 역사와 두 홈 팀에 관련된 에피소드, 라커룸, 프레스룸 등을 직접 구경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박물관 내에는 AC밀란과 인터밀란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를 구비해서 축구팬들을 유혹하고 있었고, 옆에 자리한 샵에서는 오리지널 기념품을 살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밀란팬도 축구팬도 아니었지만, 문외한도 흥미를 가질 수 있게 꾸며진 산 시로의 방문은 충분히 기억할만한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Triennale 

Sempione공원 남쪽에 위치한 Palazzo dell’Arte는 밀라노의 디자인 박물관 트리에날레(Triennale)가 위치하고 있다. 본디 트리에날레는 발음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 삼 년마다 열리는 국제박람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비엔날레가 2년마다 열리는 국제박람회인 것처럼) 1923년부터 시작된 이탈리아의 트리에날레가 1933년 밀라노의 Palazzo dell’Arte에서 개최된 이후, 강렬한 여파로 그 다음부터 본래의 건물이름을 버리고 트리에날레라는 애칭 아닌 애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방문했을 당시는 외관공사로 자칫 지나칠 뻔 할 정도로 초라했지만, 내부는 시원한 2궁전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탈리아 디자인의 연혁과 대표적 작품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었던 상설전시의 곳곳에는 대표 디자이너들의 작품설명과 철학이 동영상 인터뷰로 만나볼 수 있어 한층 이해가 쉬웠다. ‘Steel Life’라는 타이틀의(발음은 지아 장 커의 영화제목과 같다) 기획전은 한 대형철강회사가 5-6명의 아티스트들에게 의뢰해 자신들이 생산하는 강철제품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고 전시했다고 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흔히 강철하면 무거워서 우직하고 또 무식해보이는감이 없잖아 있기에 더더욱 이러한 발상을 통해 잠재적 고객과 사회에 한 걸음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예컨대 국내의 제지회사도 종이를 이용해 작가들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보면 어떨까. 아니면 타이어회사나 제과회사도 좋다. 상상력만 있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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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를 놓쳐 박물관 내 까페에서 현지친구의 추천으로 요기를 했다. 밀라노에서 5순위 안에 드는 스타셰프가 운영하는 격조 있는 곳(?)이었는데, 깔끔한 한 상을 받을 수 있어 늦은 점심이었지만 기분은 한층 업! 메뉴는 계절채소와 호박씨 등의 견과류,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곁들인 샐러드와 (이름은 까먹었지만) 스튜와 치즈를 이용해 만든 리조또를 네모난 틀로 튀겨낸 요리였다. 직접 구운 빵도 맛보고, 맛볼 시간이 없었던 에스프레소도 한 잔. 까페 곳곳에 배치된 재미난 조형물과 시원스레 뚫린 오픈키친까지 완벽한 점심을 멋지게 보조하고 있던 오후였다.  

2009/08/25 00:05 2009/08/25 00:05

이탈리아 체류기 (6) 코드명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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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에서의 편안했던 1박을 끝내고 다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한 시간 반쯤 이동하니, 이탈리아 패션산업의 중심부 밀라노에 도착했다. 6-7년 전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들렸던 것이 마지막이었지만, 여러 잊지 못할 기억들이 많이 남아 이 도시는 내가 가장 친근(?)하게 생각하는 곳이기도 하다. (최고의 카푸치노를 맛 보았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고, 꼬르소꼬모의 셀렉팅에 감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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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와 몬테나 폴레오네

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오모 광장으로 이동했다. 성수기였기 때문이었는지 역시나 두오모 광장 근처에는 여행객들과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지갑을 열고자 하는 비둘기 모이족’(이들은 유명광장 등지에서 곡식을 가지고 비둘기를 유인하는데, 그를 지켜보는 여행객에게도 곡식을 나눠주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 곡식을 받아 들게 되면, 대가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전형적인 수법이니 조심하시길)들로 붐볐다. 10년 이상의 보수공사기간을 마치고, 완성된 두오모의 모습을 보니 그 정교함과 수려함에 탄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다. 두오모를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왼편에 위치하고 있는 몬테나 폴레오네는 여전히 명품거리로서의 위상을 지켜내고 있었다.(전통적인 아케이드 형식의 몬테나 폴레오네는 발터 벤야민의 지적처럼 상품자본주의의 원조신전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몸소 체험하게 해주는 좋은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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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교회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선 사전예약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시기 별로 예약사이트를 개방하는 타이밍을 맞추어야만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데, 사이트 또한 불안정해서 제대로 예약하기에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결국 대행료까지 합쳐 6.50유로라는 적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한 행렬에 합류했다. 15분 간격으로 30명 정도의 방문객만을 허락하는데, 이들이 입장할 때도 삼중문을 통과해야지만 그림이 걸려있는 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현지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 그림을 유지/보수하는 데 일본 기업이 대대적인 스폰서십을 자청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스케일이란!) 10분간의 시간 동안 그림을 감상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엄격했던 보안 때문이었는지 관람객들의 기대감도 한층 고조된 듯했다. 은은한 조명아래 모습을 드러낸 <최후의 만찬>은 너무도 익숙한 그림이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감동이 덜 했으나, 여전히 그 안에 담긴 여러 읽을 거리와 조형미가 대작의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Tip! <다빈치 코드>를 읽거나 본 이들에게는 훨씬 흥미로운 감상이 될 것이다)

 

2009/08/22 11:49 2009/08/22 11:49

이탈리아체류기 (5) 아레나 in 베로나

발표를 마치던 날, 나머지 일정을 마치고 늦은 오후 베니스에서 베로나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특이하게도 같은 2등석이라도 에어컨이 작동되는 칸과 그렇지 않은 칸이 있음을 발견했다. (왜 그랬을까.) 담담한 척해도 은연중에 긴장을 했는지 가는 기차 안에서 금방 골아 떨어졌다. 한 시간 반 남짓 서쪽을 향해 달리다 보니 아담한 도시 베로나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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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는 소박하지만 고풍스러운 전경이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디제 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건물들과 은은한 빛의 도시색이 눈에 들어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로도 유명한 이곳엔 낭만이 구석구석 숨어있는 듯 했다. 중앙역에서 내려 이 십분 가량 걸으면 베로나의 중심인 브라광장과 만나게 되고 그곳에는 바로 그 유명한 베로나의 원형극장, 아레나가 웅장한 자세를 뽐내고 있다.

1910년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은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고 한다. 베로나 부근에 진입하자 일행은 베로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고, 세라핀은 불현듯 그곳에서 내리자고 제안했다. 다짜고짜 아레나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켜게 한 세라핀은 아름다운 소리에 감탄했고, 결국 1913 8월 처음으로 베르디의 <아이다>가 아레나에서 공연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Arena di Verona Festival>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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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을 취하고 찾은 저녁 7시의 브라광장은 화려하게 차려 입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매일 다른 레퍼토리의 공연을 펼친다는 아레나 외부 한 켠엔 다음 날 공연의 조형물들이 눈에 띄었다. 여러 개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원형극장은 웅장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아테네의 신전이 신들의 향연이 벌여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베로나의 아레나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를 제공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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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아레나의 메인 공연으로 유명한 <아이다>를 보려고 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카르멘>을 예매했다. 자유석을 구하려다, 선착순으로 입장하기 위해 폭염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좌석 중 가장 저렴한 것을 골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유로를 호가했다) 프랑코 제피렐리의 무대미술이 흥미로웠던 아레나의 무대는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는 듯한 연출을 보여줬다. 공연 당일은 만석은 아니었지만, 입장 시 나누어줬던 촛불을 나눠 붙이며 아레나 속을 환하게 비추는 관객들 덕분에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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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의 기술과 무대는 없었지만, 아날로그적인 공연의 힘이 가지는 최상을 보여줬던 아레나의 오페라. 더운 여름 밤 속 협소한 자리의 불편함을 말끔히 씻어버리는 예술적 펀치였다. Grazie, Arena! Grazie, Verona!  

2009/08/21 11:18 2009/08/21 11:18

이탈리아 체류기 (4) 베니스 섬 기행

베니스에는 여러 작은 섬들이 있다. 해수욕장과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리도섬과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섬, 그리고 알록달록한 예쁜 집들로 알려진 부라노섬까지. 시간관계 상 같은 길목에 놓여진 무라노섬과 부라노섬만을 잠시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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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공방(좌)과 전시장(우)


베니스 유리공예의 역사와 자존심을 이어가고 있는 섬 무라노에는 여러 유리공방과 고가의 유리공예품을 파는 전시장으로 가득하다. 운이 좋으면 열려진 공방 문 사이로 유리공예하는 모습을 훔쳐볼 수도 있다. (이열치열이 따로 없다. 더운 날씨에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유리를 보니;;;) 실수라도 해서 깰까 싶어 전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쉽게 손이 갈 수 있는 기념품은 없었다. 다소 원색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의 장식 때문에 설사 재량이 된다 해도 구입까지 이어질지는 의문이었다. 묵었던 숙소에도 전시장에서 본 고가의 샹들리에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리 생각에) 촌스럽다고 함부로 대할 게 아니었던 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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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서 예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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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과 창


폭염에 지쳐 배를 타고 조금 더 달려가니, 그리스의 산토리니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부라노섬이 눈에 들어왔다. 3년 전,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푸른 지중해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하얀 벽과 푸른 지붕의 집들이 잊을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던 산토리니. 그 곳보다는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부라노섬의 아기자기함과 알록달록함은 동화 속 나라에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늘상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른 개성을 자랑하면서도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집을 짓고 색을 칠하고 살아가고 싶은 생각도 있을 테고, 배로만 다니면 불편하니 차도 들여오고, 하다못해 오토바이나 자전거라도 들여오고픈 마음이 들텐데도 그곳의 사람들은 자연스러움에 느림에 익숙해진 듯 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금도 물론, 서울은 세계에서 (돈만 있다면) 가장 편리한 도시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편리함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인간위주’, ‘자기위주로 변화시켰는지 한 번 되돌아볼 일이다. 인간의 편의에 자연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자기다움에 인간이 순응해야 하는 이유. 바로 베니스의 작은 섬들에서 깨닫는 진리다.

2009/08/20 11:31 2009/08/20 11:31

이탈리아 체류기 (3) 베니스씨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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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면모가 많은 노신사와 같았다. 정신 없이 계속된 비행 이후에는 그 어떤 그림과 같은 풍경이 이어져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다가, 여독이 풀리고 정신줄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을 때면 그 엄청난 매혹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이다. 이탈리아에 오랜 기간 살고 있는 한 지인이 넌지시 던졌던 말처럼 이탈리아의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대단한 무언가였던 것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말이지만, 역사를 파는 덴 일가견이 있다. 조상 잘 만나 호강하는 격이랄까.

뜯어보며 볼수록, 요즘 말로는 그야말로 볼매베니스. 리알토 다리, 아카데미아 다리 등지에서 내려다보는 뷰도 그렇지만, 지도 없이 여기저기 헤매면서 마주치는 골목들, 자정을 넘어서까지도 시끌벅적한 바와 광장의 분위기,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반나절만 서는 장터, 베니스의 상징 고양이까지. 눈 안에 담아 그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고 싶을 만큼 베니스의 곳곳은 예술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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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사이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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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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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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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고 지나가는 야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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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장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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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 아저씨


우리나라에도 저 아래쪽 어딘가에 2의 베니스를 만든다고 한다. 된다고 믿고픈 이들이 몇몇 있는 줄로 알지만, ‘2의 무언가는 독창성을 잃은 모조품이 되기 십상이다. 베니스의 면면을 살피며 드는 생각은 시간이상으로 팔 수 있는 관광상품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묵혀야 가치가 사는 시간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버젓함이 더 중요한가 보다. 그런 마인드로는 관광뿐 아니라, 그를 만들어내는 정신도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고마워요, 베니스씨. 케케묵은 진리를 알게 해줘서.

2009/08/18 22:14 2009/08/18 22:14

이탈리아 체류기 (2) 베니스비엔날레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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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ing Worlds>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 6 7일부터 개막한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현장을 다녀온 것은 체류 2일째. 비엔날레는 크게 두 곳의 공간, Giardini Arsenale에서 진행되었다. Giardini는 월요일에 Arsenale는 화요일에 휴관을 하는 관계로 필자가 방문했던 화요일에는 Giardini를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 오픈 시간 전부터 많은 행렬로 입구는 붐볐지만, 느긋한 유러피언 행정에 기나긴 줄은 줄어들 줄 몰랐다. (여담이지만, 한국사람들의 성미가 급하긴 급한가 보다. 상대적으로 느린-그러나 그들에겐 정상적인-속도의 일 처리를 마주할 때면 기다림의 미학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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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rdini는 총 30개의 국가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큰 공원 안에 국가관들을 취향대로 찾아 다니는 맛이 있었다. 입구를 통과해 처음 들어갔던 곳은 러시아관으로 혁명적인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앞세웠다. 6000년 이후의 지구와 세상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그려낸 각각의 일러스트가 재기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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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를 끌었던 전시관은 노르딕 국가관(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었다. 어느 게이작가의 죽음을 영화 세트장처럼 꾸민 것이 특징이었는데, 관객들에게 그를 죽음으로 몰았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듯 여러 단서를 남겨준 것이 쏠쏠한 재미를 자아냈다. 물론 그 안에 놓인 여러 설치작품과 디자인, 회화작품 등은 이 전시를 위해 직접 만든 것이어서 스토리가 있는 전시, 디자인과 파인아트의 경계를 해체하는 전시로서 각광받았다. 특히 노르딕 국가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특유의 정갈한 분위기와 그들의 가구디자인, 실내디자인 철학이 잘 맞아떨어져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면서도 자신들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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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덴마크관도 이러한 재기발랄함에 동승하는 듯했다. 수집문화에 대한 냉소와 그 안에 숨은 여러 개의 스토리와 글로벌리즘과 관련된 여러 생각들을 찾아낼 수 있게끔 설치되었다. 유럽의 어느 고급 가정집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부서지고 왜곡된 설치물은 오랜 역사 동안 지속되어왔던 유럽의 수집문화가 내포한 허영을 꼬집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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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관은 지리적으로도 찾기 쉽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져 조금 아쉬웠다. 초청작가인 양혜규의 설치작품 또한 현지에서는 난해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일본관의 거대한 사진작품은 일그러진 미를 표현하려고 했지만, 이미지의 지나친 그로테스크함 때문에 애정을 가지고 감상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미국관은 방문객 숫자까지 컨트롤해가며 까다로운 면모를 보였지만, 브루스 나우만의 8,90년대 유명작품들을 전시해 참신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우만은 이미 정상을 차지한 작가이고, 그의 신작이 아닌 20년 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을 신진작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오마주도 아닌 형식으로 다시 전시하는데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프랑스관은 전시관 내부를 칠하고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 않았는지 악취가 심해 다섯 발자국 이상 진입하기가 어려울 정도였고, 독일관은 목재가구와 나레이션을 접목해 전시했지만 큰 호응은 없었다.

비엔날레의 중요성은 누구나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유럽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은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조금 더 효과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에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과 예술강대국이란 단어를 아직 동일시 하기에는 이르지만, 노르딕 국가관처럼 스스로 가진 강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어떤 이는 역사를, 어떤 이는 미래성을 어떤 이는 엽기와 충격을 내세우는 가운데, 과연 우리의 색깔,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보게 되는 기회였다.   

2009/08/17 10:57 2009/08/17 1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