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버전스의 조건 – 똘레랑스의 창의성

지난 해 다보스 포럼이 끝나고 가장 화제가 됐던 이슈 중의 하나가 ‘콜래보 경제학’이었다. 기존의 연관성 없어 보이던 영역끼리의 협력체계가 나타나고, 새로운 가치창출이 가능해 지면서 너도나도 하이컨셉의 블루오션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젠 고리타분하게까지 들리는 수준의 실례인 이베이나 애플도 소위 말하는 ‘콜래보 경제 1세대’로서 그 위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다보니, 실제 ‘콜래보레이션’이 되었든 ‘컨버전스’가 되었든 하는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되었다.
“상상을 해 봐. 스포츠에서 공을 다루는 종목이 얼마나 많은지. 근데 한 공간에 축구선수, 배구선수, 농구선수, 야구선수 모두 모아놓은 거야. 그래서 축구선수가 자기 발의 테크닉을 이용한 여러 가지 전술을 보여주니 야구선수가 그러는 거지. ‘아니, 손으로 던지면 되는 데 왜 발로 꼭 차야 해요?’ 이건 각각 종목에 대한 기본적인 룰을 무시하는 행위지. 이건 동상이몽이야. 공이라고 다 같은 공이 아니잖아.”
최근 한 지인은 그럴싸한 비유를 늘어놓았다. 컨버전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보다 더 리얼한 묘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전통적으로 획일화 되어있던 학제 간의 장벽을 허물고, 경계의 학문을 발전시켜보자는 의미에서 다양한 학제간 전공을 제시하고 있다.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트렌드와 신세대는 그에 경도되었지만 여전히 (짧은 역사와 무한한 시행착오 덕에) 그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문제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컨버전스의 절대 1 조건, 바로 똘레랑스가 전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너무나 다른 사고의 구조를 가지고 살아온 이들을 한데 모아놓는 것은, 어쩌면 그 발상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려야 하는 일이다. 동시에 그만큼 위험부담이 큰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너무 활발히 교류한 나머지 창의성의 폭발로 이어질 수도 있고, 너무 무관심한 나머지 창의성의 마이너스 현상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결국 예술, 공학, 정치, 디자인, 경영, 생물 등의 집합체가 가질 수 있는 잠재성에 대한 의심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관용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각자의 분야가 가지는 고유한 가치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똘레랑스가 전제조건이 되어야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홍세화씨 덕에 널리 알려진)’똘레랑스’는 쉽게 뱉어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개념이다. 누구든 ‘난 널 이해해’라고 말하지만, 전심으로 그를 이해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통섭 또는 통합이란 전제아래 모인 분야라면 그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너무 당연하게까지 들리지만, 현재 컨버전스라는 이름 아래 모인 집단에서 가장 잊혀지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자신이 익숙해져 있는 사고의 잣대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은 손쉬운 만큼 위험한 일이다. 진정한 창의성을 발로를 맛보기 위해선 단순히 냄비에 총천연색의 재료를 넣는다고 해서 맛있게 섞이지는 않는다. 백남준의 ‘비빔밥론’이 그 맛을 내기 위해선 ‘내 기준으로 너를 판단’하는 것이 아닌 ‘내가 아닌 기준으로 너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함’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컨버전스에 앞서 똘레랑스가 먼저임을 깨닫는 오늘 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