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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해당하는 글들

  1. 2009/08/27  7인의 음악인들
  2. 2008/12/23  Being Young in different ways
  3. 2008/09/11  가치의 환산법 (1)
  4. 2008/08/29  Pi-Male-List (1)
  5. 2008/08/01  지휘자의 등
  6. 2008/06/26  클래식형 스펙트럼

7인의 음악인들

소문이 자자했다. 2007년 성남아트센터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하고 이듬해 금호의 <라이징 스타 시리즈>의 무대에 다시 서 국내에 빠르게 입소문이 퍼진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87년생으로 독일에서 태어나 94년 독일 청소년 음악콩쿨에 최연소 1위 입상을 하면서부터 젊은 천재의 탄생을 예감하게 했다. 그녀가 올해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모차르트 소나타 음반을 내놓고, <7인의 음악인들>이란 실내악 공연과 <모차르티아나>란 제목의 독주회를 위해 국내무대를 찾았다. 정명훈과 양성원, 송영훈이란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이 갓 스물 두 살의 그녀에게 부담이 될 법도 했지만, 무대에서의 폭발력은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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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있었던 공연은 내부사정으로 인해 조금 늦게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작품으로는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제12번 다단조가 연주되었는데, 김수연이 세컨드  바이올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연 돋보이는 균형성과 리드감을 보여줬다. 오히려 퍼스트 바이올린의 이유라가 빛이 바랬을 정도. 상대적으로 연륜이 있는 양성원(Vc)과 최은식(Va)의 안정감 있는 연주도 좋았지만, 그에 뒤지지 않는 침착함을 보여준 김수연의 공 또한 컸다. 예정된 프로그램과 조금 순서가 바뀌어 두 번째 곡으로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3중주 제2번 마단조(작품번호 67)가 연주되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죽은 친구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곡은 몽환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풍기는 도입부가 상당히 인상적인데, 송영훈(Vc)의 선율을 시작으로 김수연(Vn)과 김선욱(Pf)이 다음을 유연하게 이어갔다. 특히 김수연과 김선욱이 연신 싸인을 주고 받으며, 호흡을 맞춰가면서도 독자적인 존재감을 살려가는 것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여유로운 연주를 펼쳤던 김선욱은 88년생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함을 과시했다. (심지어 능글맞아 보일 정도!) 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정명훈과 김선욱의 연탄곡으로 연주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4번과 5번은 청중의 귀에도 익숙한 곡이어서 호응이 뜨거웠다. 마지막으로 슈만의 피아노4중주 내림마장조(작품번호 47)가 연주되었는데, 정명훈(Pf), 양성원(Vc), 최은식(Va), 이유라(Vn) 모두 나무랄 데 없이 균형 잡힌 해석을 보여주었다.

앵콜곡이 (어떤 면에선) 본곡보다 한층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것이 이례적이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전 피아졸라의 탱고 앨범을 발매한 전적이 있는 송영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첫 번째 곡으로는 7중주로 편곡된 피아졸라의 Obilivion, 두 번째로는 Libertango가 연주되었다. 정명훈과 김선욱은 함께 연주하는 내내 교감하는 듯한 미소가 끊이지 않았고, 김수연의 폭발력은 남미 대가의 곡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의외였던 것은 양성원의 첼로가 (탱고 연주에 경험이 많은) 송영훈의 첼로보다 훨씬 유연하고도 기교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는 점이었다. 연주자 스스로 자유로이 리듬을 타는 모습 또한 진지한 그의 면모 뒤에 숨겨진 매력인 것 같아 보는 내내 흐뭇했다.

7인의 음악인들 모두 한국의 대표적 기악인들이라 그들이 함께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이벤트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실내악 연주가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따라서 활성화 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 연주회를 시작으로 더욱 많은 실내악 연주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이번 음악회에서는 김선욱과 김수연이라는 걸출한 신인들이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그들의 기량을 솔로이스트가 아닌 협주자로서 엿볼 수 있어 뜻 깊었다. 오랜만에 파워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신예들을 만나니, 덩달아 마음이 부풀어오르는 듯하다. 먹지 않아도 배 부른 며칠 간이 될 것 같다.  

2009/08/27 13:03 2009/08/27 13:03

Being Young in different 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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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YT


구스타보 두다멜 &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지금부터 딱 열흘 전이었다. 여러 클래식 잡지나 신문, CD가판대, 유튜브를 통해 전방위적으로 자자한 명성을 확인했던 것이 말이다. 서른도 안된 나이로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차세대 지휘자들 중 하나 구스타보 두다멜과 그를 배출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의 자랑,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귀한) 방한을 했다.

이틀 간의 공연 중 14일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공연은 그들의 주 레파토리인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와 말러의 교향곡 제1번 이었다. 너무도 대조적인(!) 음악적 색깔을 보여주는 두 선곡을 통해서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두 곡 다 대형오케스트라에 어울릴 만한 곡이라는 점 외에는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작곡가와 (세미클래식과의)뮤지컬과 정통 교향곡이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곡이라 해도 무방하다. 조금은 긴장한 듯한 두다멜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통해 점차 안정을 찾아갔고, 연주 마지막에는 3-5분 정도 굽힌 몸을 펴지 않은 채, 마지막의 음악적 여운을 한껏 들이마셨다. 활 시위끼리 부딪힐 정도의 역동성과 언뜻 언뜻 웃음지었던 마림바 연주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타 아이돌 그룹과는 달리 늘상 즐기는 모습으로 무대를 휘젓는 빅뱅의 모습과 유사했다. .. 바로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들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조금 더 특별했다.

말러 교향곡 제1번은 말러가 독일의 낭만주의작가 장 파울의 소설 <타이탄>이란 소설에 영감을 받아 만든 일종의 성장소설과도 같은 인상을 남긴다. 슬프고 우울한 정서가 많이 담겨 있지만, 그 와중에서 청춘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그린 이 곡을 진지하고도 공감하는 느낌으로 빚어낸 것이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장점이었다. 비록 개인의 역량은 다른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비해 뒤떨어질 지 모르겠지만, 하나의 큰 음악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으로서 그들은 완벽에 가까웠다.

그들을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즐길 줄 아는 면모를 풍겼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음악 안에서 찾고자 하는 그들에게 슬픔과 연민보다는 유희와 여유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남미 특유의 낙천주의와도 맞닿아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깊이 울리는 감동을 선사했다.

그들에게 젊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presence), 그 자체다. 가진 것이 애초에 없었기에 당장 잃을 것이 없다는 현실은 그들을 한층 강하게 만들었다. 젊다는 것은 자만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눈부시고, 그 스스로 강한 것이다. 그리고 스물 여덟의 지휘자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젊었다. 있는 그대로 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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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eart

일전에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영화 <로큰롤 인생, Young@Heart>가 막을 내리기 전에 가까스로 보았다. (블로그 글 다시보기) 아트선재센터에 위치한 아트홀이 특별히 월요일 조조를 파격적인 가격(삼천원)에 내놓고도 모자라, 관객들에게 영화 시작 전 직접 만든 커피와 머핀을 제공하는 등 감동서비스를 제공하여 매우 훈훈한 마음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음을 덧붙인다.

뉴 햄프셔에 사는 7-80대에 놓인 젊은실버세대들이 지난 20여 년 간 꾸려온 합창단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2008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큰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들 신파조의 휴먼다큐멘터리를 상상하기 쉽겠지만, 놀랍게도 이 영화는 매우 다이내믹하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몇 편의 직접 제작한 뮤직비디오와 공연실황과 동행취재 및 인터뷰로 구성된 <로큰롤 인생>은 지금 우리의 모습, 또는 다가올 우리의 모습을 위트 있는 시선으로 조망한다.

늙어간다는 것은 비단 젊다는 것의 반대말이 아니다. ‘젊다는 것도 그저 일정한 시간 축 안에서 임의적으로 그 상태를 지칭하는 것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피상적인 말이지만, ‘젊다는 것은 이러한 외형적인 지시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마음으로 젊고자 하고 행동으로 젊음을 발산한다면 그/그녀는 충분히 젊은것이다. 이 영화는 더 나아간 관찰을 남긴다. 이 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시간을 멈추려 하지도 않고, 죽음을 마냥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삶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이고, 그것이 바로 젊음의 유지 비결이라고 속삭여준다.

하나의 공연과 하나의 영화는 너무나도 넓은 연령과 장르, 문화권의 스펙트럼을 선사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동일하다. Being Young에서 Forever Young으로의 이행. 나 혼자만 폭삭 늙어버린 것 같아 약간은 속상하다.

2008/12/23 17:18 2008/12/23 17:18

가치의 환산법

151.70km, 240, 132,000.

어제 저녁 유성에서 출발해 서초 예술의 전당에 도달하기까지 지불해야 했던 물질적 및 비물질적 가치다.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정명훈, 랑랑이 합세한 어제 콘서트 홀에서의 연주는 대형 기획 공연답게 거의 만석에 가까운 흥행 결과를 낳았다. 추석 전야라 그런지 시 외곽이고 내부이고 할 것 없이 정체가 빚어지지 않는 도로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그 까닭 때문인지 늦은 관객도 꽤나 많았다고 한다. 무려 30분이나 늦어 결국 1부 앵콜만 겨우 엿들을 수 있었던 나로서는 애꿎은 외부상황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더 치밀하게 움직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더 컸지만서도.

 

빨간 후미등 불빛 사이로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때쯤, 자문했었다. 과연 가치를 환산하는 법은 상대적인가 하고. 특히 정서적/감정적 가치일수록 그를 환산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무슨 문화적 사치를 떨려고 이 고생을 사서 하나 싶은 마음에 스스로가 우습게 보이기도 했고, 중간 지점에서 그냥 돌아가버릴까 싶은 충동에도 사로잡혔다. 부은 다리를 주물러가며 올라가던 오페라 극장과 콘서트 홀 사이의 계단은 왜 그리도 높게만 보였는지. 좋은 공연을 향유하고자 하는 기대감과 궁상맞기 짝이 없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빼다 박은 것만 같아 순간 징그러웠다.


그래도 참 기막힐 노릇이었다. 부리나케 달려들어간 공연장 한 켠에 서서 어둠을 휘감는 쇼팽 에튀드 Op. 10-3(앵콜곡)을 들으니 누적되었던 피로와 씩씩거렸던 숨 모두 언제 그랬냐는 잠잠해졌다. ‘이별이라는 애칭으로도 잘 알려진 이 곡의 잔잔한 도입부가 무언가를 보상받고자 했던 마음의 빚더미를 잦아들게끔 했다. 몇 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서 있던 두 귓가에 151.70km, 240, 그리고 132,000원을 거뜬히 능가하는 가치가 안착되었다.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손, 오랜 기다림 끝에 고백하는 입술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비단 물리적인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이 꼭 좋아하지만은 않는 일들을 하고, 예의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만으로 채워진다는 게 버겹게 느껴지곤 한다. 하루 하루를 수면으로 매듭짓는 것도 간당간당할 노릇인데, 거기다 무슨 취미나 여가생활이라는 게 사치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도 다분히 우리 안에 내재된 감정기제를 세심하게 닦아줄 필요가 있다.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꽤나 요망한 것이라 꾸준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세정제 값이 너무 많이 든다고 불평하지 말자. 쓰라고 있는 게 돈이고, 보내라고 있는 게 시간이요, 즐기라고 있는 것이 삶이니. 때때로 가치는 내 맘대로환산되는 법이다.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를 선포한 새로운 수목미니시리즈 <베토벤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다. 내 클라리렛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순재에게 오보에를 가르치느라고 담당 오보이스트가 꽤나 고생했다고 한다. 하긴 이순재도 참 대단하단 생각을 한다. (존경) 오케스트라 엑스트라로 분한 다른 사람들도 김명민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다고 하니, 역시! , 강마에! 강마에! 장근석의 앞날에 대한 걱정(그의 나르시즘)도 잠시 접어두고, 소녀의 마음으로 감상해 주련다. <노다메 칸타빌레>와 여러모로 비교되겠지만, 이 정도 출발이면 주눅들 필요 전혀 없단 생각이다. 김종학 프로덕션의 새 야심작, 한국드라마의 앞날이 밝다.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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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1 16:58 2008/09/11 16:58

Pi-Male-List

페미언니들이 들으면 기절하실 얘기지만, 많은 분야에서 초정상에 서 있는 이들 중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재계를 살펴보면 그러한 성적 편향은 극단적으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알파 걸이니 뭐니 지난 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긴 했었지만, 실세의 권력지도에는 별다른 미동이 (아직까지는) 없는 듯 하다. 문화계로 오면 그 상황은 조금 완화되긴 하지만, 얼마 전 방한한 스웨덴 여성 지도자가 말했듯 어느 정도의 평등은 이뤄졌을 지언정, 완전한 평등은 아직 멀었다는 게 적합한 표현일게다. 다소 미신스런 얘기지만, 신은 평균적인 재능은 다수의 여성에게 주시고, 평균 이상의 재능은 소수의 남성에게 주신 건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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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랑랑 (우) 윤디 리


 

중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랑랑과 러시아 출신의 소프라노 안나 넵트레코가 등장했을 2003-4년만 해도 이러한 기운들이 그 전 신동세대-, 키신이나 사라 장이 활동하던 890년대-와는 선을 긋는 일종의 클래식의 MTV’화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나 이후 윤디 리, 임동혁(& 임동민), 김선욱 등으로 이어지는 피아노 신예들의 등장은 여성 (신동) 클래식 주자의 행보에 비해 두드러지게 화려한 것이었다. 결국 실력과 외형을 겸비한 예비 스타들이 철저한 마케팅 전략에 의해 노출되는 것이 전혀 새롭지 않게 된 이상, ‘피아니스트 열풍을 넘어선 ‘Pi-Male-List’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수년간 발행된 소비자 분석 서적 가운데 230대 여성의 돈지갑이 가장 큰 타겟이라고 밝힌 내용이 대부분을 이룬다. 그만큼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같은 나이대의 남성에 비해 자기만족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많다는 얘기다. 예를 들자면 최근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 보이그룹(빅뱅, 샤이니, 2pm 등등)의 공략대상에 물론 틴에이저 층도 포함되겠지만, 그 이상으로 실질적인 이윤창구로 작동하는 것이 바로 일명 누님들’, 230대 여성층이다. 이런 현상을 곰곰이 살펴보면 시장이 ‘Pi-Male-List’의 등장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하등에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보다는 일을, 사회적 시선보다는 개인적 취향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돈 좀 있는) 잠재적 여성 고객층이 형성됨을 예측하고 그 구미에 맞는 패키지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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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임동혁 (우) 김선욱

 


(
다분히 사적인 호불호가 섞였으나) 그렇다면 그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차갑게 말해 ‘Pi-Male-List’하나 하나가 완벽한 상품이라고 해도 소위 말하는 오로라, 혹은 자체발광이 없다면 그들은 허울 좋은 벽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시 요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냉혹하다. ‘물건이다 싶지 않은 물건은 아예 내놓지도 않는다. (결국 이제부터 나열할 들은 다 멋지다는 뜻.) 일단 중국의 혜성부터 시작해보자. 화려한 퍼포먼스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전혀 스케일에 눌리는 기색 없이 멋진 연주를 선보인 랑랑. 데뷔할 때부터 열광했던 유럽에서 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첫인상이란 천하를 호령하는 중국의 황제와도 같았다. 대륙적인 기질을 넘치게타고난 랑랑은 소품보다는 대곡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고, 작은 독주회보다는 큰 행사에 자신의 200%를 보여주는 예다. 무대매너도 탁월하고, (다분히 미쿡적인) 쇼맨십도 있어 ‘쎄서미스트리트에 출연해 큰 호응을 얻었을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거물 피아니스트로 거듭났다. 그에 비해 쇼팽 전문가답게 유약한 이미지의 테리우스 윤디 리는 얌전하면서도 선이 살아있는 연주를 선보인다. 유약하다고는 하지만, 강단은 살아있는 걸 보면 역시나 지킬 건 지킨다는 인상을 준다. 두 번의 서울 공연을 지켜보면서 랑랑 만큼 드라마틱한 연출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비교대상만 없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전문 레파투아를 만들어가는 연주가가 되지 않을까 한다. 임동혁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소녀팬들을 클래식 공연장으로 끌어들인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김정원은 논외로 하겠다.) 국제 콩쿨을 휩쓸며 (역시나) ‘리틀 쇼팽으로 명성을 날렸던 임동혁의 매력은 수줍어하는 외모와는 달리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연주를 보여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협연을 통해서 다소 단독적이었다는 기존의 틀을 깨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임동혁에 비해 조금 더 애늙은이같고 조금 더 깡다구가 있는 피아니스트가 바로 김선욱이다. 상당한 애연가라는 주변의 증언만큼이나 인생의 깊이를 일찍이 깨친 케이스랄까. (허어 -_-) 명망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앞의 다른 피아니스트들과는 달리 순수국내피교육자라는 사실이 클래식계에서는 기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물론 손열음도, 고봉인도 있다!!!) 게다가 연주 내내 구도자와 같은 심각한 표정과 진지한 해석은 자칫 그의 나이를 의심하게끔 한다. , 그런 조숙함이 그를 오늘의 경지에 이르게끔 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매력 만점인 ‘Pi-Male-List’라면 자본의 계략인줄 뻔히 알고도 넙죽넙죽 상납하지 않겠는가. 때때로 그들의 음악이 아닌 다른 요소에 빠진 자신을 발견할 때쯤이면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겠지만, 그래도 고상한 취미의 21세기적 진화니깐 눈 딱 감고 속아주련다.  



 베를린 필과 랑랑 협연,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콘체르토 작품번호 1, 1악장
(그의 데뷔시절이니 조금 더 풋풋한 맛이 있습니다요;)  

2008/08/29 23:25 2008/08/29 23:25

지휘자의 등


지휘자의 등에도 표정이 있다. 곡을 좇아가기에 급급한 등, 단원의 디테일을 놓치는 등, 지휘봉에 휘둘리는 등처럼 신기하게도 지휘자의 등에는 표정이 있다. 정명훈의 등에는 거대한 지도가 보인다. 검은 색 수트 밑에서 꿈틀거리는 근육의 봉우리와 그 사이의 질곡을 휘감아 도는 악상의 늪. 관객의 눈에 힐끔힐끔 비치는 얼굴의 주름 깊이 지독한 날들의 끝없는 고민이 번뜩이는 것 같아 서늘한 기운이 돈다. 작지만 밝은 할로겐 등 아래 너덜거리는 악보를 잡고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 트럼펫 솔로 나지막이 들어가고 점점 크레센도, 첼로 들어오고 그 뒤를 잇는 더블베이스, 탕탕-둥둥, 그리고 잠시 정적. , -하고 시작. 그의 머리 속은 이미 전쟁 중. 음과 리듬이 엉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자리를 찾는다. 또렷하기만 한 혼과는 달리, 육의 안구는 꺼풀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잠시 고개를 파묻고 일어나니 동 틀 무렵. , 또 이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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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매해 이맘때쯤 열리는 APO(Asia Philharmonic Orchestra)의 공연이 지난 7 30일 저녁 8,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있었다. 지난 해에도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연주를 보여준 지안 왕(첼로)과 일본 차세대 주자 다이신 카지모토(바이올린), 그리고 정명훈(피아노/지휘)과의 베토벤 삼중 협주곡 협연은 (복잡다다한 관계를 넘어서는) 한중일의 특별한 음악적 만남을 선사했다. (특히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번갈아 가던 마에스트로의 모습이란!!!) 언젠가 정명훈은 지휘자가 되어서 좋았던 점으로 더 이상 피아노를 직업적으로 치지 않아서 좋다라고 했다. 그 때문일까. 지난 해 바르톨리 독창회 때에 이어 이번에도 줄곧 여유 있는 연주를 보여주어 진정한 대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부에 연주된 말러 교향곡 5번은 장장 70분에 달하는 대곡으로 오케스트라의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품이다. 특히 관 파트의 선전으로 말러 다운 말러를 만날 수 있었던 멋진 연주였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상대적으로 취약한 관은 예전부터 말이 많았다.) 현의 진중한 스케일을 한껏 감상할 수 있었던(일전에도 오디오 북으로 소개한 적이 있는) 4악장 아다지에토 또한 이번 연주의 백미였다. 정명훈의 서울 시향과의 계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의 연주에 가기에 매번이 애틋하다. 진중함을 담은 마에스트로의 등과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으며.    

2008/08/01 11:26 2008/08/01 11:26

클래식형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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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필의 새 지휘자, 야닉 네제-세겐



넉넉잡고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의 역사를 따져본다면 11세기 정도가 된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기원을 9세기부터라고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클래식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워낙 역사와 문화를 걸쳐 다양한 층을 형성해 왔기 때문에 어떤 게 클래식이냐?’고 질문했을 때, 한 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클래식 음악은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이라는 말로 통용되고 있지만, 실제 순수하게 언어 자체 만으로 두고 본다면 ‘Classic’‘Classical’ 간에는 어느 정도의 의미 차가 있다. 전자는 일류(작품) 혹은 고전 자체를 지칭하는 단어이며, 후자는 되려 그를 수식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기에 그 자체 만으로는 온전한 단어로 사용되기 힘들다.)

 

이런 클래식 음악계(이하 클래식 계)에서 십 수년 전부터 대두되었던 문제가 미래의 클래식이다. 이는 신문의 종말과 유사한 문제로 물론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형태로 변모해 가야 한다는 내외부의 압력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메이저 레이블 사를 중심으로 하는 스타 마케팅과 POP이나 MTV등과 같은 대중적 장르 혹은 채널과의 제휴는 팔리는 클래식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관련 업계와 클래식 음악가들의 위기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펼쳐진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로테르담 필)의 내한 공연은 이러한 클래식 계의 변모하는 스펙트럼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랑랑과 더불어 지난 해에 이어 올해 다시 내한한 윤디 리(Yundi Li)와의 협연은 다분히 이벤트적인 면모가 돋보였고, 오는 8월 로테르담 필에 음악감독으로 정식 취임하는 젊은 지휘자 야닉 네제-세겐(Yannick Nezet-Seguin)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난 해, 윤디 리 공연에 대한 리뷰 링크)  

 

언론에서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적이 있지만 이미 유럽 음악계에서는 두스타보 두다멜(27),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36), 다니엘 하딩(33), 필리프 조르당(34) 등의 젊은 2,30대 지휘자들이 대거 등장한 데에 있어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디오 만큼이나 비주얼이 중요해진 이상,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그들의 화려한 외모 혹은 에너제틱한 연주모습), 음악회 실황 뿐 아니라 다양한 DVD작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무한한 영감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젊은 연주자들의 등장이 반가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오히려 동양권에서보다 서양권에서 클래식이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 받고, 고리타분한 음악으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이와 같은 젊은 피(!)를 활용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보인다.  

 

라벨의 ‘La Valse’를 시작으로 윤디 리와 함께한 프로코피에프의 ‘Piano Concerto No.2 in G minor op.16’, 그리고 마지막 작품으로 연주한 쇼스타코비치의 ‘Symphony No.5 in D minor, op.47’에 이르기까지 이번 로테르담 필의 프로그램은 다소 격정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인상을 안겨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례도 흐트러지지 않고 온몸으로 지휘한(!) 네제-세겐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로테르담 필의 잠재성이 청각의 촉을 타고 흐르는 듯 했다. 불안한 정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드라마틱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통해서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근현대로부터 그 이전의 시간으로 거슬러올라가는 음악적 여정의 신호탄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아니면 그 이상의 큰 그림이 숨어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의 리드미컬한 지휘봉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회는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초반까지만 해도 네제-세겐의 진두지휘에 뚱했던 관중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의 4악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와 함께 연신 브라보를 외쳐댔다. 아직 앳된 모습이 가시지 않은 젊은 지휘자의 얼굴 뒤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의 무게와 이해의 연륜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젊은 것은 늘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 것보다는 좋은 것이 많다고 느껴지는 때다. 그렇기에 이 젊은 지휘자의 서른 넷이 염려스럽기 보단 이유 없이 두근거린다. (연합뉴스 공연관련 기사)   



2008/06/26 23:58 2008/06/26 2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