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즈음에,
사족1.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해 ‘중년’이란 단어 자체가 아직 섹시한 지는 모르겠다. 물론 성숙한, 보다는 숙성된,이 더 잘 어울리는 나이가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만 말이다. (이쯤에서 조지 클루니나 브래드 핏 모두 중년에 더 멋져졌다는 얘기는 들먹거릴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외쿡’의 경우다. 모두 솔직해지자.)
사족2. ‘중년’의 사전적 의미는 ‘마흔 살 안팎의 나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청년과 노년의 중간지점 정도가 되겠다. 그러나 이것 또한 어디까지나 ‘과거의 기준’에 의한 정의다.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100세까지 바라보는 것이 낯뜨겁게 되지 않은 이상, 마흔 안팎을 과연 중년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 지 모르겠다.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자. 사람이 동성보다는 이성에게 더욱 관대하다는 심리학적 근거를 뒤로하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는 단연 중년의 남성상이 연배의 여성상에 비해 찬란한 경우가 많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우리 머리 속에 각인된 이미지 또한 중년의 여성 하면 ‘아줌마’가 퍼뜩 하고 떠오르는 반면, 남성의 경우 ‘아저씨’와 ‘신사’가 동시에 떠오른다. 불공평한 처사지만, 흠. 사실이다.
갈수록 결혼을 거부하는 ‘골드미스’가 늘어나고, 혼인인구 대비 출산율이 저하되면서 다시 한 번 ‘여성과 가정’에 대한 사회학적인 진단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비단 ‘직업과 결혼’이 인류 최대의 딜레마는 아니지만, 적어도 동양문화권 내 존재하는 여성들에게는 벗어 던질 수 없는 짐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느 때보다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중년의 언니’들이 써나가는 신(新)여성사가 머나먼 토스카나 지방의 사프란 리조또 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진다. 꿈나라 탐험은 두 시간 남짓, 극장에 불이 켜지면 ‘띵동!’. 현실로의 회귀다, 안타깝지만. 
전작 <여왕의 교실>과 <톱 캐스터>등을 통해 줄곧 강인한 직업여성 이미지를 구축해왔던 아마미 유키가 서른 아홉살의 정신과 의사 오가타 사토코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어라운드 40>. 뭐, 제목에서도 ‘너무 잔인하게’ 드러나듯이 마흔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전문직 여성이 겪는 사회적∙개인적 갈등을 그린 드라마.

핀란드 헬싱키의 한 골목에 일식당을 차린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 분)는 장사가 되지 않아 한 달 넘게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던 와중에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 분)와 마사코(모타이 마사코 분)가 우연히 식당에 모여들면서 여러 일들이 생긴다. 아름다운 핀란드의 자연과 소박하지만 임팩트있는 일본의 식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난 영화. 소프트한 버디무비로서도 손색이 없다.
중대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두 작품을 보면서 느낀 건 그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는 풀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개중에는 풀리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일과 결혼, 거기다 출산의 문제까지. 이 범주에 국한시키고 보면 서른에도 막막했던 문제들이 마흔이 되었다고 해서 초강력 파스마냥 시원스레 해결되지 않는다. 여전히 그들은 끙끙대고, 울거나 웃거나, 불행해하기도 행복해 하기도 한다. <어라운드 40>는 이 문제를 조금 더 현실에 가깝게 두고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에게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결혼생활을 해 나가는 친구들이 있고, 아이가 있거나 없거나, 돈이 많거나 없거나, 모든 처한 상황과는 관계없이 각자의 문제로 괴로워한다. 반면 <카모메 식당>은 조금 더 진화한(?)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일이냐 가정이냐’의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한 여성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선택한 이국에서의 삶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선택을 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지에 주목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는 그다지 우울하지 않은 모습으로, 아니 더 정직히 말해 유쾌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우정은 남자의 전유물만은 아닌 듯
<어라운드 40>와 <카모메 식당>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 한 가지는 세 명의 여성(친구)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지고 서로를 다독이면서도 때로는 시기하고 반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무적인 건 이 ‘여성동맹’이 꽤나 탄탄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페미니즘’적인 수사를 달지 않더라도 그들은 동일한 정체성과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여성성을 더 큰 조화를 위한 분모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남성들의 뜨겁고 끈적거리는 우정과는 또 다른 형태의 우정이 가능함을 어필한다. (영화 <카모메 식당>은 이를 넘어서서 여성공동체를 통해 일종의 ‘유토피아’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결국 중년?
이러나 저러나 결국은 중년의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쌩쌩하기만 했던 몸뚱아리가 점차 ‘노화’되어 감을 진저리나게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 ‘젊은 것’들이 이유 없이 얄밉게 느껴지는,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유년을 그리워하게 되는 나이. 일에서나 가정에서나 안정적인 위치에 놓여있지만 저마다의 ‘구멍’을 안고 사는 나이. 그래서 멋지기도 하고 서럽기도 한 나이. 그래서 위기가 될 수도 있는 나이. 이충걸이 경고했듯 ‘젊음을 자만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은 중년을 메인스트림의 가치로 어설프게 포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중년일수도 있고, 아직 아닐 수도 있고, 애저녁에 지났을 수도 있다. 그와는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온, 오지 않은, 혹은 지나버린 시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한번쯤 ‘어떨까’하고 턱을 괴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나 당신이 여성이라면 중년이 비단 ‘풍요로 넘치는 마법의 옷장’이 아닐 수도 있음을 가늠해 볼만하다.

#p.s
위의 드라마와 영화 모두 출연하는 연기자가 바로 '카타기리 하이리'다. 워낙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배우라 <카모메 식당>에서 처음 접하고는 리서치를 무진장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후) 그 이후 <어라운드 40>에서 여주인공의 연하남의 누나로 등장해, 범상치 않은 연기를 펼치고 있다. 참, 이유없이 호감가는 스타일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중독성 있는 캐릭터다. 주목해 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