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학위 사이

엉뚱한 실험을 하나 해보죠. 학문과 학위 사이에 여러 전치사를 넣어보겠습니다. 다음과 같이요.
학문 (그리고) 학위
학문 (그러나) 학위
학문 (그래서) 학위
학문 (또는) 학위
이 외에도 다양한 적용이 가능하겠지만, 이 안에서만 논의를 도출해보도록 하죠. 네, 그럽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번째와 같은 방식으로 사고합니다. 학문을 하고자 하니 학위를 한다-는 식이죠. 솔직히 이러한 사고방식에 그 어떤 하자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찜찜한 구석이 있긴 하죠. 학문을 위해서 학위를 한다는 게, 대외적으로 정당성은 인정을 받겠습니다만, 좀 더 대담하게 나갈 수도 있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말인 즉, 학문을 하고자 한다면 학위 없이도 밀고 나갈 배짱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라고요. 근데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학문을 위해 학위를 하기보단, 학위를 위해 학문을 하는 경우가 더 많잖아요. 잘못된 거요? 없죠, 물론. 타박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의문은 그 다음 단계에 있습니다. 그렇게 학위를 얻고 싶어서 학문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건가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 다음에도 ‘학문’하면서 살 지 않겠냐 구요? 그럴까요, 과연?
학문 (그리고) 학위는 그나마 학문과 학위를 독립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일 겁니다. 그래도 그 사이의 연관관계에 대해선 위의 가정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인정을 하는 것이고요. 학문 (또는) 학위는 각각의 독립성을 조금 더 존중하자는 입장일 테고, 학문 (그러나) 학위는 학문과 학위를 개별적인 것으로 봄은 물론, 학문을 하는 데 굳이 학위를 할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 격이 될 것입니다.
학계에서 학위의 등장배경은 효율성에 있다고 봅니다. 고대사회에도 물론 선생과 제자의 관계는 존재했었죠. 그러나 비단 그 관계가 오늘날의 ‘학위’개념과 동일시 될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는 그 관계가 조금 더 유연하면서도 확고했다고 보여집니다. 서양 고대에서보다 동양 고대에서 보여지는 관계는 더 다양합니다. 다소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자연에게서 배우고, 제자에게서 배우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웠으니깐요. 그러던 것이 더 많은 이들에게 체계화된 교육이 제공되고, 그들 가운데서 ‘배우는 이와 가르치는 이’를 가르고, ‘많이 배운 이와 덜 배운 이’ 사이를 가르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학위’라는 게 등장했죠.
한국사회만큼이나 ‘학위’에 집착하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겁니다. 7-80년대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따 가지고 오면 교수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만큼 ‘업’을 위해서 학위를 취득하는 사람이 많이 없던 시절, 해외에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던 시절에는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이야기가 어디 먹히나요? 소위 ‘U턴’하는 유학생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5년 10년씩 박사학위를 해도 원했던 ‘교수’자리는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근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의 교수시장이 포화된 지는 벌써 십 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참 이상할 노릇이죠? 학문을 위해서 학위를 한다면, 굳이 교수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을 텐데 말이죠. 학위에는 집착하면서 학문에는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현상,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겉으로는 학문이 우선이라지만, 결국은 모두 학위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학문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학문의 본질이 흩뜨려 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배움의 태도, 주변 사물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학위 취득의 여부로 간단히 익힐 수 있는 문제일까요? 학문은 학위보다 훨씬 순수하고 객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학위라는 주관적인 목표를 위해 학문을 사용하다 보면, 그 본래의 성질이 변할 수도 있겠죠. 학자라면, 아니 최소한 학문을 하는 이라면 이에 대한 끊임없는 자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장사꾼 같은 박사, 정치하는 교수, 토익 공부만 하는 대학생-모두 학문과는 왠지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학위는 ‘진짜 학문하는 사람’과 ‘학문을 하는 척 하는 사람’을 구별해주는 기준으로 다시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만약 학위에 그러한 ‘필터링’ 기능을 하게끔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르게 나아가야겠죠. 학위가 없이도 학문할 수 있는, 그런 이들을 독려하고 존중하는 사회로 말이죠. 현대의 효율성은 많은 것을 얻은 만큼 많은 것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게 바로 학위수여자는 많지만, 학자는 부족한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왜 배우나요? 한 번쯤 묻고 싶습니다.
(서비스) 재밌는 사이트 하나 소개하죠. Ph.D의 애환을 절절히 담고 있는 연재 만화입니다. 공감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즐감하시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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