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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c'에 해당하는 글들

  1. 2008/11/2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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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TENDO KIDS remix

문화기술프로젝트라는 수업에서 동기가 속해있는 한 조가 자신들의 remix 작업과 관련하여 보여준 비디오 클립이 너무 재미있어서 포스팅 한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닌텐도 64를 선물로 받은 아이들 두 명이 너무 좋아 괴성(!)을 지르는 평범한 홈 비디오를 가지고, 재기 넘치는 아해들이 간단한 리믹스 버전을 내놓았다. 문득 UCC가 무엇의 약자인지 따위가 언론고시에 나오던 시대를(심지어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니다) 추억하며, 더 이상 (최소한 영상의 영역에선) 교육 시스템에서 창의적인 실험들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할아버지나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즐기는 자가 최고인 세상. 그게 바로 크리에이티비티의 또 다른 얼굴이다.  


다원예술매개공간

다움에서 리서치 알바를 하던 중 ‘Inter-Arts’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촌스런 (부분) 대전 거주인으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다원예술정도가 될 것인데, 실제 한국예술위원회에서도 얼마 전 다원예술만을 위한 분과위원회를 설치할 정도로 그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캐나다나 호주 등지에서는 정부 주도 아래 다원예술에 대한 많은 지원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 문화권에서 ‘Inter-Arts’는 말 그대로 예술 안에서의 화학작용을 살펴보고자 함이다. 이전까지는 미디어 아트의 일부로 인식되어 오다가, 그보다 한층 프로그레시브한 의미를 담고 ()기술 의존적인 성격을 지닌다. 현재 서교동에 다원예술매개공간이라는 다원예술분과위원회의 사무실도 있는데, 비평과 전시/공연이 함께 이뤄지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언더적인 마인드의 실험극 등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한층 기술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작업들의 스펙트럼도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애들이나 빨리 데뷔시켜야겠다.)  

앨리스 온의 칼럼   

경희대 경영대학원의 뉴미디어 비즈니스라는 수업을 하고 있는 이지선 교수가 연재하는 뉴미디어와 비즈니스시리즈가 눈길을 끌었다. 대학원 내에서도 뉴미디어를 비단 학문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보단 이를 어떻게 기존의 산업군과 접목시키고 상용화 단계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이 존재했었기에 이러한 비즈니스 마인드에서 출발한 분석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뉴미디어와 인터넷, TV,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이 칼럼이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여러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앨리스 온>미디어 아트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웹 진으로써, 실한 내용과 엣지 있는 시각으로 인정받고 있다. 관심 있는 이들은 종종 들러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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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족인건 알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비단 실적주의로 흐르는 것만은 아니고, 조금 더 넓고 깊은 선상에서 좋아하는 물에 첨벙거리며 살아가는 게 그렇게 실 없고, 비현실적인 일만은 아닐 거라고 말이다. 좋은 학교, 좋은 교육, 좋은 스승 또는 좋은 클래스메이트란 개개인의 아이디어와 시각을 진 회색의 냉소로 짓눌러버리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미미한 가능성이라도 더 크게 더 민감하게 발견해주고 긍정해주는 것이 시스템이 그 안에 있는 창조적 개인이 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시에 최대한의 서포트일 것이다. 좋은 학교라고 알려져 있는 공간에서 정말로 재능 많고 훌륭하기까지 한 인재들이 일 방향적인(구시대적인) 프레임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상황은 분노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교육은 선견지명이 있는 선각자가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요, 십 수년간 연구만을 해오던 석학이 짠하고 내어놓는 종류의 것도 아니다. 개개인의 본연의 성질과 그(또는 그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자아의 딥 오션까지도 200프로 발현할 수 있게끔 기다려주고, 칭찬해주는 것이 교육이다. 나 또한 (비겁하게도) 이꼴저꼴 보기 싫어 달나라에 가서 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학교에 있다. 훗날 선생이라도 되어 얄궂게 누군가를 괴롭히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런다면 오늘의 이 마음만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열린 마음이 그 열림때문에 쉬이 다치게 되더라도 굳게 닫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상관없이 질경이 같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다. 그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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